아픔과 고통을 공감해주라

친지 중에 변변한 직장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오십이 다 된 동생이 있다. 한 때는 폐인처럼 살아서 어머니가 해주신 전세, 월세 보증금을 다 탕진한 채 신용불량자로 살았다. 친어머니와 누나들에게조차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무능하다고, 술 담배 중독에 사람 구실 못하는 구제불능으로 취급받았다.

우연한 기회에 대화를 나누던 중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극심한 불화와 가난을 겪었고, 유약한 성품인데다가 외아들로서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강박증과 두려움에 시달려왔다. 계속 내재되어온 두려움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조차 회피하게 만들었고, 하는 일마다 꼬여 교통사고 가해자의 거짓증언으로 감옥에도 다녀오게 되었다. 몇 해 전에는 아버지의 병 간호 중 칼을 찾으며 자살하겠다는 것을 말리면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온전치 못한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물건을 던져 기절시키며 쌍욕을 해댔기 때문이었다. 결국 과호흡 증세로 숨을 쉬지 못하기도 하고, 불면증에 귀신들까지 보여 불을 끄고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얼마 전 문자 메시지가 왔다.

누나,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처럼 인생과 세상의 허상을, 그 허무를 겪은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그래도 인생의 허상을 알고서야 내가 넘어야 할 노력의 산과 측은한 주변 사람들의 운명이 보여. 겉으로 성공한 인생처럼 보여도 별 것 아니라고 느껴져. 내 주변의 사람들이 더 소중해질수록 일이 많아지네.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는 없겠지만, 나처럼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모자란 대로 위로하고 사랑을 다하고 싶어. 위로와 사랑을 알려주고 싶어. 내가 누나에게 운 좋게 받은 축복을 나도 나누고 싶은 거지. 누나는 내게 그런 사람이야. 내게 축복 같은 사람, 절망이 전부인 삶에 에너지가 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 어두운 중에 비친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이 되어주어 너무 고맙고 사랑해.”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셨음을 느낀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희망의 싹이 돋게 하신 것이다. 무엇이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일까? 그가 본 빛은 바로 이십여 년 전 완전한 절망 속에 있는 나에게 너의 허물과 실수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내 암흑을 날마다 그분의 빛으로 채워가셨고,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달이 되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내 안에 빛의 에너지를 부어주셨기에 나 또한 존재할 수 있었다. 주님 안에서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이기에 사랑의 마음을 품고 동생에게 답신을 보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소개하셨단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셨지. 난 그 빛이 사랑이고, 내 삶의 원동력임을 확신한단다.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이 네 속의 빛이 점진적으로 강해지게 해 주실 거야. 난 확신해. 네 소망은 꼭 이루어질 거야, 소중한 너의 사람들에게 꼭 이 빛을 전하렴. 넌 할 수 있어.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해. 허물과 죄 많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용납해주는 것이란다. 그들의 고통을 같이 슬퍼하며 정말 힘들었겠다!’하고 공감해주면 된다. 그리고 고통과 죄악 너머에 있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보려고 노력하면 된다. 네 속에는 정말 착한 마음이 있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들이 행복해지는 거야. 난 널 믿어. 힘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죄인인 우리를 용납하시고 격려하신 것같이, 나는 단지 그것을 조금 따라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하는 말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판단을 비우고 성심껏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용납하고 격려하자.

우리는 영적 지도자가 아니라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자신의 한계와 상처들을 드러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지닌 은사를 발견하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과 친교의 삶을 예감할 수 있도록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강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