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팔로 너를 붙들리라

십년 전 쯤 나는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잠깐 방황한 적이 있었다. 워치만 니의 책을 읽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결혼도 직장도 가족도 다 포기하고 오로지 주님만 따르며 살아갈 것을 결단하였다. 진리를 따르는 삶이 고상하고 위대하게 여겨졌고 거룩한 성자들의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스스로도 주체 못할 정도로 뜨거운 가슴으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 송이 꽃이 피고 지기까지 어떤 날들을 무수히 겪을지 알 수 없지만, 두 톱니바퀴처럼 고통과 행복은 공존한다. 고통 없이 행복이 없고, 우리 인생에 행복만 이어지는 날도 없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정식 수도자가 되기 위해 수련과정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박하기만 한 그 때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가족들과도 멀어지고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였고, 앞으로 함께 가야 할 동료들에게도 숱한 오해를 받는 듯했다.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버겁고 무겁게 느껴졌다.

견디다 못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집에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착복식(수련과정을 마치고 정식 수도자가 되는 관문)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의 계획을 스스로 바꾸려고 했다. 구질구질하고 고통스럽게 살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즐기던 운동으로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시작해야지 마음먹었지만, 미래에 대한 갈등이 계속 되었고 큰 회의가 몰려왔다. 건강도 잃어버리고 돈도 친구도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의 큰 은혜로 남과 다른 인생을 선택했다면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러갈 때쯤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데, 불현 듯 너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자문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때 주님의 큰 울림이 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너는 지금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앞으로 법조인이 되어야 할 텐데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무능력한 사람인 내가 무슨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냐며 뿌리치려는 찰나 주님께서는 지혜의 눈을 열어주셨다.

잠시 잠깐 살아갈 이 세상에서도 법조인이라고 하면 존경을 받고 중요한 일을 하는데 하물며 영적 법조인이라면 놀라운 일이 아닌가?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는데 넌 그것을 잠깐의 어려움과 세상의 염려 때문에 포기할 것이냐?’그 순간 선택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주님은 결코 못 갈 거 같으면 그만두라고 다그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조용히 기다리고 계셨다.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수도자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 말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다시 일어날 것인지를 말이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영원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 땅에서 버려진 고아처럼 살다가 후회가 남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설계자이시고 후원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나의 약함을 알지만, 하나님께 다시금 가겠노라고 결단 하고 일어섰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갈등하며 고뇌하면서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늘 두드려본다. 그럴 때마다 세상이 나를 삼키려고 숨통을 조이지만, 주님은 여전히 나의 선택을 한없이 기다리신다. 수없이 포기하고 갈등하는 그 순간조차도 선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신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에 실망하여 난 안된다고, 더 이상 못 갈 것 같다고 하지만,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깨끗이 고쳐 쓰겠다.’고 격려하신다. 먼지와 티끌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결코 포기치 않고 주님의 강한 팔로 일으켜 세우신다.

결국 돌아온 곳은 늘 하나님의 넓은 품이다.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나를 수없이 벗겨 내야 하는 아픔과 수치심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 연약한 의지와 걸음걸음을 견고케 하실 하나님을 믿기에 오늘도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