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회의 창설자인 필립보 네리(1515-1595)가 생각이 난다.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으로 귀족 가문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들이 없던 백부에게 양자로 가게 되었다. 양부의 사업을 배우면 훗날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으나, 재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경의 부자 청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10:21)를 묵상하며 자신에게 보장된 모든 재물과 권리와 미래를 포기하고 로마로 떠났다.

로마 사피엔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여 뛰어난 신학자가 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지식을 구가하는 학문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내려놓고 선택한 것은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었다. 공부하던 책을 몽땅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한 발짝 더 다가서는 방법이었다.

지금 당장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주진 않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늘 아이들로 붐볐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도 매우 각별했다. 어떤 사람이 이처럼 아이들이 떠들어서야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니까, “아니오. 죄만 짓지 않는다면 나의 등 위에서 장작을 패도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규칙은 지극히 단순했다. “사람들이 순종하게 하려면 많은 규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 한 가지 규칙만 정했습니다. 사랑입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얼굴이 더러워도 여전히 천사이며, 하늘나라의 조그마한 자리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의 전기를 쓴 카를로 가스바리는 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중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평신도들을 인도하고, 명령하기보다는 설득하고, 엄정하게 이치를 따지기보다는 애정으로 감싸고, 격려를 통해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교만을 스스로 벗어버리게 한다. 그리고 악을 피하고 영혼을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는 데 적합한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루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감사하다.’는 필립보 네리의 기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생각과 뜻을 이루고자 근엄한 말과 명령조로 아이들을 설득하려 하고 엄정하게 이치를 따지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어른이라는 무게로 아이들에게 중압감을 주지는 않았는지, 사랑과 진심어린 격려로 아이들에게 선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는지, 죄를 멀리하고 아이들의 영혼이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기쁘게 아이들을 이끌어주었는지, 틀과 의무감에 메이고 자신의 명예욕을 만족시켜주는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느 시대든 어떤 환경이든, 어떤 아픔과 상처를 가졌든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값비싼 선물과 신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일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이 가장 앞서야 한다. 이제라도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자랄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에 열심을 내야겠다. 이 가을 아파하는 아이들의 가슴이 사랑으로 물들여 지도록 기도의 손을 모아본다. 작은 천사들이 내 곁에서 활짝 웃고 있다.

어린이 사역은 때론 많은 희생과 섬김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멈추지 않고 솟아나는 사랑이다. 아이들은 끊임없는 사랑을 요구하고 갈망한다. 특히나 요즘 시대는 더욱 그런 것 같다.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세파에 여과 없이 노출되다 보니 사랑은 그들을 치료하는 유일한 치료약이다. 물질도, 쾌락도 그들을 치료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예수님처럼 다가가 사랑하고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이해하는 일은 많은 인내와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그러한 마음의 진실함이 없으면 어린이 사역은 어렵고도 힘든 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수십 년 어린이 사역을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사랑 없음에 한탄할 때가 많다. 더 많이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인내하지 못하는 순간들로 인해 괴로울 때도 있다. 나 역시 주님 앞에서는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는 더러운 죄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시 결단하며 주님 앞에 나도 작은 아이로 서본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주님은 가장 자비롭게 나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할 일은 사랑하는 일 밖에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