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김우현 감독이 최춘선 할아버지를 최초로 만난 것은 19957월이었다. 걸인과 같은 모습에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 찬 종이를 온몸에 두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비의 초대, 예수그리스도의 자비의 초대를 외치면서 맨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 첫 만남을 통해 김 감독에게, 그리고 수많은 크리스천들에게 하늘의 빛을 던져 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해를 걸러 만날 때마다 참 신기하게도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날 수 있었고, 만나면서 점점 할아버지의 말이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사는 한남동으로 찾아간 김 감독은 움막이 아니라 번듯한 집에 놀랐고 그의 아내로부터 듣는 할아버지의 옛 얘기에 더욱 놀랐다. 동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친근하게 바라봤으며 동네 곳곳에는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전단지들이 붙어 있었다. 김 감독이 마지막으로, 그것도 우연하게도 최춘선 할아버지를 본 것은 20017월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하철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다녔다. 하지만 목소리는 쇠했으며 많이 수척하신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 온화한 모습은 여전했다. 김 감독은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발을 만져볼 수 있었고, 할아버지는 오래간만에 만난 김 감독에게 신문광고 문구로 쓰인 생명이란 단어를 떼어주었다. 지하철이 들어오자 할아버지는 충성은 열매 가운데 하나요라는 말을 남기고 아주 먼 곳으로 가듯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흘러가는 차창 너머로 할아버지는 마치 작별인사라도 하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셨다. 김 감독과 헤어진 할아버지는 1호선 수원행 열차에서 전도하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평온하게 돌아가셨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이 없어 감사를 달고 사셨던 맨발의 천사 할아버지를 만났던 김 감독은 어쩌면 부지중에 천사를 만났던 아브라함의 축복을 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김 감독은 말한다. “최춘선 할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길을 봤다.”

우리 인생에서 만남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족과의 만남, 친구들과의 만남, 동료들 간의 만남, 사제 간의 만남, 여러 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만남, 스쳐 지나가는 만남 등. 어떤 만남은 좋은 만남이 있고, 어떤 만남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만남도 있고, 어떤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 되기도 한다. 어떤 만남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도전과 빛을 던져주는 만남도 있다.

일자무식이가 마흔 살에 독학으로 성경을 접한 뒤 100여 마지기의 논밭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평생 누더기를 입고 밀가루 쑥범벅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비의 삶을 살다간 이세종(1880~1942) 선생. 이 선생의 제자로 음식을 빌어 오갈 데 없는 고아, 걸인, 폐병환자들을 먹여 살리며 자신은 맨발로 눈길을 걸으며 끼니조차 잇지 못하고 살다 폐병으로 죽은 맨발의 성자또는 동방의 성 프란체스코로 불리는 이현필 선생. 그가 독특한 한국적 영성의 꽃을 피운 이들의 뒤를 잇게 되는 순간이었다.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아름다운 만남은 거룩한 빛을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최고의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 시험을 준비하던 23살의 청년 김준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것은 이현필(1913~1964) 선생이었다. 교회 종소리에 끌려 간 해남읍 수동교회에 어느 날 왜소하고 꾀죄죄해 보이는 30대 농부 같은 이가 초대되었다. 신자들과 바닥에 둘러앉은 그는 화병에 꽂아놓은 국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꽃을 꺾지 마세요.” 자연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는 이현필 선생의 한 마디가 23살 청년 김준호의 영혼을 흔들었다.

사도 바울을 만났던 디모데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거듭났다(고전4:17). 모세를 만났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다수의 반기(反旗)에도 용감하게 전진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인생이 추울 때/ 너를 만나/ 나를 꽃으로 대해준/ 네가 고맙다.// 많이 밟힌 여정/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시선/ 너를 만남으로/ 나를 새롭게 만난다.// 인생이 추울 때/ 너를 만나/ 나를 꽃으로?만들어준 네가 고맙다”(하금주 시인).

우리의 만남이 주님 안에서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영적 가치관에 변화를 주고, 주님의 꽃으로 피어나는 계기가 되면 얼마나 좋으랴.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빛 된 행실로 부지중에 만난 천사로 기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의 몸짓, 행동 하나하나, 언어, 눈짓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 만남은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리라. 우리가 빛 가운데 순간순간 살아갈 때 그 가운데 만나는 이들에게 거룩한 빛을 안겨줄 수 있다. 주님 안에서 만나는 작은 만남들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오늘 하루 거룩한 빛 안에서 살아가기를 결단해보자. 저 천국 보좌에 계신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그날을 기대하면서 우리의 삶속에서 거룩한 만남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