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께 붙들려 일생 목회만 하다가 은퇴하신 노 목사님이 어느 모임에서 설교 중에 질문을 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듣는 사람들 나름대로 속으로 누가 가장 불행할까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 건강을 잃은 사람, 건강을 잃은 사람 중에도 어쩌면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어쩌면 귀가 안 들리는 사람, 다리를 잃은 사람, 나이 들어 자녀가 없이 혼자 사는 노인, 집 없는 사람 등. 사람마다 자기의 일생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각자 다른 대답을 마음속으로 했으리라. 그런데 그 노 목사님의 3가지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런 대답이었다.

첫째는,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최고인줄로 착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둘째는, 달팽이처럼 자기 집만 짓는 지도자라는 것, 셋째는, 예수 믿으면서 자기의 삶속에서 스스로 갈등하며 다른 사람과도 갈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목회자들에게 하는 말씀이고, 세 번째는 목회자는 물론 모든 성도들에게 하는 말씀이었다. 그 목사님은 일생 하나님께 붙들리어 목회만 하시다가 은퇴하시어, 죽음을 앞둔 자기의 일생 속에서 나름 그런 결론을 내리셨으리라.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최고인줄로 착각하는 사람.’ 설교를 들으면서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었다. 대부분의 목회자가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최고인줄로 알기 때문에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도 안하고, 연구도 안하고 스스로 자기 마음을 폐쇄하여 변화가 없는 삶을 사는데, 그것은 큰 착각이고 큰 불행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자기를 매일 새롭게 해 나가는데 유독 목회자만 자기가 아는 것이 최고요,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여 발전이 없고, 일생을 허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무섭게 책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시지 않으신다. 누구에게도 전체를 다 가르쳐 주시지 않으신다. 어떻게 유한한 시간 속에서, 제한된 공간을 살아가면서 그 끝없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자기가 살던 지역을 한 번도 떠나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구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북극에서 살던 사람은 지구가 다 얼음으로만 만들어진 곳으로 알았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만 살던 사람은 지구가 다 산으로만 만들어진 것으로 알았으리라.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일생을 살던 사람은 지구는 밀림으로만 만들어진 곳으로 알았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살던 사람은 지구는 대부분 바다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수많은 영계체험자들이 있지만, 한사람도 똑같은 체험을 한사람은 없다. 어느 누구도 천국전체를, 지옥전체를 보고 온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다만 성경 안에서 그것들을 서로 맞추어 보여주신 만큼만 알고, 그 범위 안에서만 서로 연합할 따름이다. 착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불행한 사람이 되어 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용서하고, 함께 살아내려는 의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달팽이처럼 자기의 집만 지으려는 목회자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목회자는 주님을 따르는 대표적인 사람들인데,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배려를 따라야 하는데 자기만 알고 살아간다. 주님은 마지막 십자가에서 저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과 용서는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대가를 대신 받으시기 까지였다.

주님을 따른다면 당연히 주님처럼 그들의 죄의 대가를 내가 대신 지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면 그렇게 살수가 없다.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불행을 면하리라. 하나님 관점으로 보아야 바로 보게 될 것이다.

목회의 소명을 받았던지 아니던지, 무슨 직분을 받았던 스스로 갈등이 없고, 다른 사람과도 갈등이 없어야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매일 은혜 받고, 체험했다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갈등 속에서 산다. 갈등이 없으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대로 기쁘게 살수가 있다. 그러나 현재 갈등이 있으면 기쁘지 못하고 열매도 없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의 씨앗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전에 미국에서 생활이 어려워 아파트를 다니며 페인트 일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 회사는 예수 믿는 집사님이 사장이라, 매일 아침 예배로 하루를 시작했고, 일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일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차량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흑인 아파트마을에서 작업을 하던 중 누군가가 문을 부수고 차량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그 차는 15인용 밴 정도의 큰 차인데, 그 안에는 페인트, 영주권, 크레디카드, 중요한 서류들이 많이 있었기에 대단히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장로님은 아침예배에 동참하고 아무런 갈등이 없는 편안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었다. 그 장로님의 편안한 얼굴을 보며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잃어버린 차를 찾았다고 생각하며, “차를 찾았습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아직 차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배 후에 그 장로님께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편안한 얼굴로, 오히려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지나시는지 물었다. 그 장로님은 그렇게 대답한 걸로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주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믿지 않는 분들에게 기뻐하라는 말씀대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대답은 그 후 평생을 살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갈등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과도 갈등이 없었던 그분의 인격을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가 노년에, 모든 사명을 마치고 난 후,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묻는다면 우리 각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