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피서

오늘은 집안일로 인해 늦게 나섰더니 도서관에 자리가 거의 없다. 간신히 한 자리를 찾아 앉으니 36도 무더운 날씨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숲이 시원하다. 어느 지역은 견디기 힘든 39도를 기록했다고 하니 참으로 늦여름이 펄펄 끓는다.

그래도 도서관이 곳곳에 있어 시민들이 책 속에서 피서할 수 있으니 감사하기만 하다. 특히 군포는 책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때마다 독서 행사가 펼쳐진다. 산으로 둘러싸여 산본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도시 삶의 질 평가도가 전국 2위다. 철쭉과 시가 있고, 관내 도서관이 다섯 개나 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엔 도서관은 만원이다. 에어컨 때문이라지만 피서를 도서관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주말이면 가족 전체가 도시락을 싸서 오는 이들도 있다. 자녀들은 자연스레 책과 친해지고, 식후에 숲을 거닐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가정의 화목은 벌써 가족 안에 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을 만든 건 대학이 아니라 마을 도서관이었다고 고백했다. 하버드대의 수업에 지루함을 느껴 중퇴하고 매일 다닌 곳은 도서관이었다. 거기서 마음껏 원하는 책을 읽었다. 발명왕 에디슨도 지역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는 도서관을 통째로 먹어치웠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의 지적 향상을 위해 사가독서제를 실시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필요한 만큼의 휴가를 주되, 다른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직 책을 읽으며 쉬라고 명했다. 그동안에도 녹봉이 나와 가정에 배달됐고 학자는 오직 그 좋은 책만을 읽으며 아무런 염려 없이 마음껏 휴식하는 것이다. 더운 여름이라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피서인가! 참으로 몇 백 년 후까지 바라본 혜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텔레비전과 컴퓨터,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책을 잊어버린 젊은이들은 하나 둘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기보다는 재빨리 정보를 클릭해 찾아내는 자가 지식인이 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럴 시간이 없다. 정보의 세계에서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하며 매스미디어의 노예처럼 긴장된 삶을 산다.

구름이 어떻게 피어오르는지, 열매가 어떻게 익어가는지, 초록색이 언제 갈색으로 변하는지, 노을이 언제 붉어지는지그들은 궁금하지도 감격하지도 않는다. 그저 클릭을 하면 다 알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믿는 그것은 컴퓨터 언어로 만들어진 지식뿐이다. 초조와 불안이 그들의 그림자다. 그들에게 여유란 더 좋은 사양의 제품을 사서 더 속도 빠르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잠시의 기쁨일 뿐이다. 곧 다시 허덕이며 더 정신없이 매여야 함을 망각한 채.

도서관은 모든 게 여유롭다.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가는 아날로그 공간이다. 언제든지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다. 책을 읽다 창밖 구름을 좇아 지난날을 회상해보기도 좋다. 쇼팽의 녹턴이나, 베토벤의 월광 같은 곡을 조용히 이어폰으로 들으며 명상에 잠겨도 교통사고의 걱정이 없다. 읽다가 쓰기도 하며, 삶을 돌아보고 잊어버린 편지도 쓸 수 있는 곳.

해마다 점점 더 더워져 걱정 많은 이 나라에 가장 질 좋은 피서, 가장 안심하고 갈 수 있는 피서지는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가면 향긋한 냄새 속에 책들이 제발 나를 읽어달라고 손짓하며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