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로 나아갑니다

버스 창밖, 은은한 빛을 내뿜는 하얀 십자가, 지붕에 우뚝 솟은 붉은색 십자가, 파란색 십자가 등. 모양과 색깔도 가지각색 크기도 다 다른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삶에도 다양한 십자가들이 크고 작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미를 찾아간다. 각자의 몫이다.

하나님의 임재연습으로 널리 알려진 로렌스 형제. 50세가 넘은 나이에 평수사로 들어간 가르멜 수도원에서 그에게 맡겨진 소임은 주방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남은여생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자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주방 일에 서툴고 익숙지 않았기에 주방소임은 적잖은 부담이었다. 밖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쉴 새 없이 일들은 주어졌고 고된 일들의 연속이었다.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불평과 핀잔을 다반사로 들으면서 처음에는 고행자로 수련을 쌓는 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볼품없는 육체나 부족한 능력을 탓하지 않으며, 지극히 작은 일들 가운데 진정한 의미를 찾아갔다. 점차적으로 분주하고 힘든 업무 속에서 내적 평강을 맛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통한 교제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하찮고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일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행하는 것이었다. 설거지 더미 속에서도, 지푸라기를 하나 줍는 가운데서도, 먼지가 잔뜩 묻고 냄새나는 낡은 신발을 수선하면서도. 자신의 소임을 부끄러워하지도, 꺼려하지도 않았다. 젊고 유능한 형제들 틈 속에서 늘 겸손한 자세로 낮아짐을 연습하며 또 연습했다. 말이 적었지만 명랑했으며, 늘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늘 한결같은 자세와 평안한 얼굴은 마침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느끼고 보게끔 했다.

가끔 많은 일과 지친 육체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실망치 않았다.

하나님을 잊었을 때는 무척 비참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일을 할지라도 그것을 피곤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얼마나 큰지를 보시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그 일을 행하는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덜 힘들며,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쉽습니다. 이 세 가지를 인내로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더욱 수월합니다.”

때론 즐겁기만 하고 고난이 없을 때는 자신이 지금 뭔가에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 여쭙곤 했다. 언제나 영적싸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기쁨이요 존재의미였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기에,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낍니다. ,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망 가운데 모든 일을 행하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크고 작음이,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행동 하나, 말 한마디, 눈 한번 깜박거리는 일, 아주 사소할 것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행할 때 그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내 남은 인생이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우리 주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장 큰 의미가 되길 소원한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