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네 어머니라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은 아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한평생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글과 시를 많이 남겼는데,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고 하는 제목의 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한 가득 배어 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도 하고, 살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중 딱 한 가지만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마리아의 노래

나도 가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대답할 수 없는 엄마를 작게 불러보곤 한다. 그러면 잠시 위로가 된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언제나 엄마의 말은 딱 두 가지였다. 밥 먹었냐. 감기 조심해라. 거창하거나 중요한 어떤 말도 교훈도 없는 단순한 두 마디 말이, 이상하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자녀에게 어머니의 존재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생각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혈육에 관하여는 엄격하기가 힘들다. 혈육이 가지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 나도, 너도, 공감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가 없는 게 혈육이다.

십자가 위, 모진 고통 속에 죽음을 앞두고 매달려 계시던 예수님의 눈동자가 집중된 곳은 어머니 마리아가 서 있는 곳이었다. 그 곁에는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등 여인들이 울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그리고 제자 요한에게도 보라 네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잉태한 아들이지만, 여인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보통의 어머니들이 가지는 사랑과 애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 몸 되었던 열 달이 있었고, 두 손을 붙잡고 걸음마를 가르치고, 밥을 먹이고,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는 아들을 보면서, 문득 인간적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들로 홀로 고통 하는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들이 결국 십자가에서 고통에 목말라 하는 것을 봐야할 때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는 어머니는 칼로 찌르는 것 같은 마음을 그저 부여안을 뿐이다.

예수님은 눈물짓는 어머니의 아들이셨다. 이 땅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 아들이셨던 예수님이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간절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는 언제나 먹먹하다.

교회의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면,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서 의지하고 사랑하는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엄마들은 자녀들을 위해 무엇이나 한다. 자녀중심이고 그들 편에서 한없이 희생한다. 흘린 것을 주워 먹고, 똥을 치워주고, 자신보다 먼저 먹이고, 입히고, 보살핀다. 그들에게 아이는 목숨이다. 자신이다. 엄마는 자식에게 뼈를 깎아 주고 살을 떼어 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던 우리 엄마의 말을 어렴풋이 실감하곤 한다.

사랑으로 답하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고통가운데 계신 스승의 부탁을 받는 사도요한은 어떠한 마음으로 부탁을 받았을까.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불리는 요한.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13:23).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19:26).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21: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21:20).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사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는 90세가 되기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15세에서 18세 정도가 될 때 첫 아이를 낳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을 때에 이 나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예수님의 나이 차이는 많아야 18세 정도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33세에 돌아가셨으니 마리아의 나이는 50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리아가 90세까지 살았다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마리아는 40년이나 살았다. 만약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요한의 나이가 20대 라고 한다면 6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모셨다는 결론이 나온다. 요한은 자신의 청춘을 오직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며 산 것이다.

평소 자기를 가리켜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 부를 정도로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더 큰 야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성격도 불같았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는 3년 동안 온유하고 겸손하며 끝까지 인내하는 법을 보고 배우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은 특별하신 섭리로 빠르게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비밀을 여는 은혜를 입었다. 어쩌면 다른 제자들처럼 어디론가 떠나 왕성한 사역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가 와도 어머니 마리아 때문에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하는 것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스승이셨던 예수님의 명령을 묵묵히 실천한 요한. 자신이 예수님의 도구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생 죽도록 충성하며 예수님의 간절한 부탁을 기억했다. 보라, 네 어머니니라.

예수님의 부탁

다른 사도들이 다 순교할 때 요한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한 증거가 바로 어머니 마리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아주 세밀히 살펴서 성령의 감동으로 가장 높은 차원에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요한1서는 온통 사랑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말하고 있다. 요한이 나중에 한 90살내지 100살 가까이,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 당시 체포되어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었을 때, 거기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중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위대한 요한계시록을 썼다. 인류역사를 향한 계시를, 많은 제자 중 요한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엔 인류를 향한 사랑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과 동행하며 배우고, 그 사랑을 경험했고, 마지막까지 특별한 사랑을 부탁받았던 사도 요한. 그가 일생 반복한 말은 서로 사랑하라였다.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하며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던 그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을 몸소 보았고 그 분의 삶의 이유를 알고 그 행보를 끝까지 지켜봤기 때문이었으리. 마지막 유언으로 부탁받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자주 사랑하던 예수님을 추억하며 살았을 것이고, 이제는 어머니와 아들이 된 두 분은,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야기를 은총가운데 나누면서 일생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처절한 버림받음, 배신과 비웃음도 인류를 향한 사랑 하나로 다 용서하셨던 예수님. 강도 같고, 도둑질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며 죽이는 살인자 같은 우리들에게, 회개하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는 우리들의 예수님, 나의 하나님.

엄마를 만나면,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만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말한 정채봉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가만히 예수님께 고백한다.

엉엉 울고 싶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부탁하신 일들, 겸손하고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주님 마음에 더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