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게 하소서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가 뜻밖의 비보를 전하였다. 아버지께서 퇴근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전도의 첫 열매였던 친구였지만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꽤 됐었다. 다시 한 번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라고 생각되어 만남을 청했다. 슬픔과 상실감에 젖어있는 친구는 대화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담을 쌓고 지내온 지가 수년, 언젠가는 화해할 날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늦은 후회의 눈물을 쏟아내는 친구에게 이 말 저 말 건네며 위로하고 헤어졌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과 같이 함께 울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든다. 가장 큰 전도는 그저 슬픔을 함께 나누며 아파하는 것이라는데, 냉랭한 마음으로 건넨 몇 마디가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나의 상처에는 지극히도 민감하면서 남의 아픔에는 어쩜 이리 둔한지 모르겠다. 누가 조금 서운하게 하면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왈칵 쏟아질 준비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아무리 큰 망치로 쳐도 도대체 반응이 없다. 사람은, 아니 나란 사람은 정말 무섭도록 이기적이다.

북한에서 동포들이 굶어죽고, 성도들이 잡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어도 혀를 끌끌 차며 독재정권을 비난할 뿐, 긍휼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오늘 밥상에 무엇이 올라오는지가 더 큰 관심사다. 무슨 사고 소식을 들으면 일단 내 가족, 친척, 지인이 관련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없으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뒤돌아 휘파람 불며 간다. 가족이나 친척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얼른 위로와 축복의 말씀을 찾아 읽어주고, 당장이라도 작정기도에 들어간다. 남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니, 일단 회개할 것부터 찾아보라.’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훈수를 둔다. 교회 안에서는 고통을 해석할 때 남이 받으면 죄로 인한 형벌이요, 내가 받으면 의를 위한 핍박이다. 자신에게 베푸는 관대와 긍휼을 남에게 베풀었다면,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자비를 뛰어넘었을지 모른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으셨다. 긍휼과 동정의 마음으로 유대 땅 곳곳을 다니셨다. 동족을 등쳐먹고 사는 매국노라며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있을 때, 그의 처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측은과 연민으로 가득하셨다. 과거 화려한 남성편력을 가졌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 한 잔을 부탁하실 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지 않으셨을까. 시도 때도 없이 병 고쳐 달라고, 먹을 것 좀 주시라고 좇아다니는 무리들을 보는 마음은 또 어떠하셨을까.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불쌍히 여겨 아마도 마음이 너덜너덜해지셨을 것이다. 진실한 친구였던 나사로가 죽었을 때 늦게 오심을 원망하는 마리아를 믿음 없다 책망하지 않으셨다. 함께 슬퍼하시며 울어주셨다. 자신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엄청난 고통을 당하실 때조차,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다.

이용도 목사님의 기도가 냉랭한 나의 가슴을 흔들어 깨운다. “! 주님, 저는 얼마나 평안하고 호의호식하며 안일한 생활을 합니까? 그런 중에도 얼마나 마음이 돌과 같이 굳고 단단합니까? 저희의 굶주림을 보면서도 나는 배불리 먹어 감사를 올리고 돌아설 뿐이며, 헐벗은 그들을 보면서도 나는 나의 헐벗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만 생각하여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설 뿐이 아니었습니까. , 나로 하여금 차라리 감사하는 자가 되지 않고 죄송을 느끼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먹을 때는 먹는 나를 기뻐하며 감사하지 않고, 먹지 못하는 친구들과 슬퍼하며 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주여, 나에게는 이러한 울음이 없습니다. 나는 저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저희의 사정이 나에게 와서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 저에게 눈물을 주소서!”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의 눈물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너무나 많다. 함께 울어주기를 바라는 신음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말이 아닌 가슴으로 아파하고 끌어안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하다. 나를 위한 연민의 눈물을 거두고, 이웃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눈물을 주시기를 간구해야겠다. 자신을 죽이고 남도 죽이는 이기심을 버리고 교회와 공동체를, 나라와 인류를 살아나게 하는 긍휼의 눈물을 주십사 기도해야겠다. 눈물이 절실하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