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합니다

며칠 전 나의 부족함과 결점을 꼬집어 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그래도 나름 고치려고 조심하고 있는데 하는 반항심과 변명이 함께 일어났다. 또한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결점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속 좁은 가슴팍에 자그마한 화살이 꽂히자 나도 똑같이 작은 화살이라도 꽂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겉으로는 “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긍하는 것처럼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쓰렸다. 나의 부족한 덕과 행실로 인한 결과이건만, 마음의 평화가 깨어져 버렸다. 옹졸한 심보 같으니.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기 위해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칭찬과 격려의 소리, 좋은 소리 듣기만 좋아하는 얇은 귀가 언제쯤 바뀌려나? 아직도 너무나도 어린 아이구나. 자그마한 말에도 화들짝 놀라고 토라지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행실을 언제쯤 벗어버리려나?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그마한 결점 하나를 고치는데도 이렇게 요동을 치니, 앞으로 저 수많은 결점들을 언제 다 고치려는지. 수없이 부딪히고 깨어져야 하는데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힘없이 성전에 앉아 있는데, 고개를 떨 군 채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자아로 인해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 있는 나의 교만을 무언중에 꾸짖고 계시는 듯 했다. 그러면서 문득 마더 데레사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가 겸손하다면 그 무엇에도 우리는 초연할 것입니다. 비난을 받는다 해도 낙담하지 않을 것이고, 칭찬을 듣는다 해도 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진정한 기쁨과 평화와 덕행은 십자가에서만 즉 멸시와 모든 피조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부당하게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고통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는 우리가 불의하게 고통 받을 때, 그 이유를 헤아리지 않는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 가해진 모든 불의를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현세적인 재물이나 명예를 잃어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영적 재물 즉 덕행을 마련해 주신다.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아첨하고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보다 더 큰 피해는 없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는 하나님을 피하여 피조물에게로 기울어질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피조물이 우리에게 쓴 맛이 된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큰 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말로써 괴롭힌다면 몇 마디의 부드럽고 겸양한 말로 대답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의 분노를 꺾고 그를 이겨내게 된다. 우리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양순하고 친절한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은 덕행이 아니다. 그러나 불친절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덕행이다. 자기에게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를 내는 사람은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을 때 보복하려는 어린아이와 같다. 인내는 모든 악을 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 중에 어떻게 행하셨는가?

그분은 대적자들 중에 단 한 사람에게라도 악담을 하신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그들을 위해 피를 흘리지 않으셨던가. 만일 우리가 불평하고 변명하고 보복하려 하고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한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손에 우리의 일들을 맡겨드리자. 그분이 우리보다 더 잘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열심히 살고 싶다면 멸시받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반대 받는 것 외에는 어떠한 다른 이득도 고려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해야 한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다.

우리가 만일 세상과 본성과 마귀를 끊어버릴 것을 고백하고, 그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원수 취급을 받게 되리라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반대하고 방해하고 저지하려 하겠지만, 십자가의 거룩한 어리석음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원한다면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하며, 자신의 사랑이 정화되기 위해서는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곳곳에 그리고 매순간 우리에게 십자가는 늘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신비가 놓여 있는 셈이다.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