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없고

요즘 나는 특별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기간 동안 기도를 회복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정돈하려는 의도가 뚜렷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주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게 된다.

한동안은 늘 반복되는 일상처럼 내 안에 더러운 죄와 허물이 요동치고 들춰질 때마다 괴로웠다. 밥 먹듯이 눈물을 삼키며 한숨을 내뱉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마다 주님은 손을 내미셨고, 나는 더러운 손을 염치없지만 부끄럽게 내밀었다. 주님의 손은 늘 따뜻하며 포근했다. 차디찬 얼음같이 차가운 손은 한없는 용서와 사랑 속에서 녹아내렸다.

많은 바람과 햇볕과 비를 만나며 고개조차 들 수 없도록 연약하고 볼품없게 되었을 때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녹이기 위해 주님을 부르고 부르며 찾아 헤매는 이 순간조차도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린다.

늘 사순절이 다가오면 주님께 무슨 특별한 것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주님은 작정기도 기간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 드릴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율법에서 이러한 자는 돌로 치라 하였는데 어떻게 말하겠느냐 물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시고 일어나 말씀하셨다. “당신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시오.”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하나 사라지고 여자와 예수님만 남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정죄한 자들이 어디 있느냐 하시며 여자에게도 말씀하셨다. “나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니 돌아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마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주님께서도 마땅히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여자를 용서하시고 또한 죽음의 선상에서 구출해주셨다.

주님은 어느 누구도, 어떠한 죄도 용서해주신다. 다만 회개하고 반복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이 기간 동안 주님께 드릴 것은 회개이다.

난 어떤 것에서 돌이키며 어떠한 죄와 정욕과 싸워야 할까? 무미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에 성령의 단비가 내려 절박하고 진실된 참회와 돌이킴이 필요하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며 용납하지 못하는 환경과 깨어지기 싫은 자아는 무엇인지 주님 앞에 다 토해내고 싶다.

요즘 눈치작전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로해 주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피해 다니고 있다. 무기력하고 지친 심신을 무기 삼아 합리화하며 쉬고 싶다는 게 이유다. 주님은 이런 내게 순수한 동기와 착한 마음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을 해야 되지 않겠니?”라고 권면하신다. “저도 힘든데 어떻게 베풀 수가 있어요? 그럴 힘도 능력도 없어요.” 라고 말해보지만 주님 앞에서 자존심과 주장은 쓸모가 없어진다. 반드시 후회를 남기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어떤 위로를 해드려야 하나, 어떤 답을 드려야 할까 고민했는데 그것도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냥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고 그분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해결해주시고 선하게 이끌어 주심을 경험한다. 내가 드러나기를 원하고 칭찬받기를 원하였기에 세찬 폭풍을 허락하셨다. 엎치락뒤치락 결국은 내가 없고 주님만 계심을 고백하고 인정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사순절 주님 앞에 묵묵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고 싶다. 부끄러워도 서글퍼도 내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서겠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겸손을 배우고 용서를 배우며 사랑을 배워 나가기에 영원한 패배자는 아닐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승리의 깃발을 드신 것처럼 작은 것부터 회개하고 낡고 부패된 마음의 응어리를 제거하여 용서하고, 결국 사랑의 열매를 맺어 기쁨의 깃발을 흔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님,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악한 자를 선하게, 약한 자를 강하게, 분노하는 자를 온유하게,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주님 뒤 따르는 작은 자로 승리를 얻게 하소서.”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