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순결을 찾아서


주일 오후예배를 마친 후 교회 현관문을 막 나서려는 찰나 정이 많으신 김 권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리 잠깐 와 봐요.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225cm예요.” 권사님은 비닐봉지에서 까만 부츠를 꺼내면서 한 번 신어보라고 하셨다. 하얀 털이 덧대어 진 부츠에 발을 겨우 집어넣었다. 사이즈는 딱 맞았지만 부츠를 신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 부츠가 정말 탐이 났다. 그날 아침은 올 겨울 들어 영하 18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 가장 추운 날이었다. 교회를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한 대가 쌩 지나쳐버렸다. 발가락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발을 동동거리다가 신발을 벗어 몇 번이고 발가락을 주물렀다. 왠지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보상이라도 해주시는 듯해 부츠를 덥석 받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신발을 신어보았다. 신발을 벗는 데 양말이 훌러덩 벗겨졌다. 나보다 발이 더 작은 분에게 양보를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거저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에 갈팡질팡 망설여졌다.

그날 저녁,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뒷 표지에 기록된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는 대목에서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부츠 하나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의 미련함과 그동안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느라고 허비했던 시간들로 인해서였다. 그리고 어느새 옷장과 방안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소유가 다름 아닌 나의 영적 실상임을 보여주는 듯해서였다. 훌러덩 벗겨져 드러난 맨발은 어쩌면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가 된 내 영혼인지도 모르겠다.

아동문학의 거장,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 똥, 몽실 언니가 각각 60여만 부나 팔리는 성공을 거뒀지만, 7평 남짓한 작은 오두막집에서 혼자 극빈의 삶을 살았다. 그는 평소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하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여 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몇 년 전 문화방송에서 느낌표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책 읽기 캠페인의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하였다. 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 백만 부씩 팔려 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 불 때였는데,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혼자 책을 고르는 순간이다. 그걸 왜 방송에서 막느냐.” 자신의 책이 많이 읽히기를 원하는 욕망 이전에 아이들의 순박한 세계를 깨트리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전신에 결핵이 번져 생사를 넘나드는 가운데서도 예수님만 의지하며 병을 이기고 뽑아낸 그의 글들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따뜻한 동심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풍요로운 삶이 무엇인지 삶으로 직접 보여주셨다.

풍요로운 삶이란 새 한 마리까지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인간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건 더럽고 부끄러운 삶이에요. 덜 먹고 덜 쓰고 덜 입어야 죄 짓지 않아요. 조금 춥게, 조금 외롭게 살아야 세상이 깨끗해져요. 세상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고, 더 많이 누리려고 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그분의 맑은 가난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다음은 시인 도종환 님의 글이다.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조탑리 노인들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걸 보고 놀랐고, 병으로 고생하며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불쌍한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천만 원 이상의 인세수입이 있는 분이란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10억 원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 인세 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으신 걸 보고 또 놀랐다고 한다.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 평짜리 흙집이다.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 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 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 생각하며 민망했다.”

권정생 선생은 가난과 병고를 일평생 짊어지고 사셨지만, 순박함과 순결함을 잃지 않았던 분이었다. 현대를 가장 무섭게 힐책하는 말은 아마 순박함을 잃어버렸다.”는 말일 것이다. 이 시대는 물질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점점 순박함을 잃어가고 있다. 수많은 혜택과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외로워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위로 오르는 데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순박한 마음이라는 날개와 순결한 마음이라는 날개다. 순박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순결함으로써 하나님을 얻어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동화 한 편이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고 한 그의 말은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순박함과 순결함을 지닌 영혼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리라.

권정생 선생의 글 중에 한 단락을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누가 이렇게 물었다. “장가는 못 가봤는가요?” “, 못 가봤습니다.” “그럼, 연애도 못 해봤나요?” “연애는 수없이 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 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

순박하다. 맑다. 그런데 묵직한 감동을 준다. 무거운 교훈을 심어주려고 온갖 지식을 들이미는 글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깨끗함이 살아있다.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에게 덴마크의 한 소녀가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동화 작가가 될 수 있겠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쇼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첫째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둘째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셋째 역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순박함과 아름다운 마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맑게 해준다. 우리가 어디서 살든 무엇을 입고 먹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는가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덜 먹고 덜 입고 조금 더 춥게 살아도 영혼의 순결함을 사모하며 내 안에 주님을 순간순간 모실 수 있다면 그게 참 행복이다. 태어날 때도 공생애 동안도 십자가에서는 더 없이 가난하셨던 벌거숭이 예수님 앞에서 욕망의 신발을 벗어 던져버리자. 맑고 순박한 아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에 들고자 작은 몸짓을 쉬지 않으면 된다. 아주 작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