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음에서 넓음으로

수도회에 입회한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나님께서는 3년간의 수련과정을 마치는 때에 부모님이 계신 선교지 캄보디아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10년 만에 타보는 비행기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발걸음, 그동안 말로만 듣던 부모님의 선교지를 눈으로 본다는 설렘이 비행기를 감싸는 구름만큼이나 마음에 가득했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는 캄보디아는 감동보다는 충격이었다. 별다른 관심 없이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귀로 듣고 머리로 그려온 것과는 차이가 컸다. 비포장도로에서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일어나는 먼지는 1초 만에 온몸으로 다 마실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옆에서 온갖 종류의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팔고 있고, 나무로 지은 집 위에는 가난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는 무소유의 살림들이 놓여있었다. 거리에는 우상을 담아두는 신주단지들과 사원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보였고, 뜨거운 태양은 단 몇 분 만에 살갗을 빨갛게 익혀주었다. 이 모든 환경들이 전화 통화와 아버지의 선교칼럼에서 듣고 보며 짐작했던 내용들이었지만, 직접 눈과 피부로 느끼니 충격적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모님과 전화로 가끔 통화하며 사역지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내 지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다. 바울선교회 이동휘 목사님께서 가끔 와서 해주시는 특강 내용들을 열심히 받아 적어 선교의 원론을 정리 한 후, 그 잣대로 부모님을 판단하고 가르치려 했다. “좀 더 오지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같이 사세요.” 나의 철없음과 무지는 정의롭고 괜찮은 것이 아닌, 교만과 무례함이었다.

부모님이 위대한 선교를 하기 바라는 영적인 욕심만 앞선 철부지 딸의 충고였다. 현장에 와보니 나의 교만과 아집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다 아는 것처럼 판단했던 것, 잘잘못을 바로 따지며 정죄하려했던 것. 어디 부모님한테 뿐이었는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체휼하지 못한 채 편협한 머리로 나름의 결론을 내려버렸는가를 돌이켜보니 부끄러움이 밀려들어 온다. 나의 높음과 좁음으로 참 많은 것들을 조급하게 결론 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만났으니 행복한 시간 보내라고, 3년간의 수련과정이 끝났으니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지라고 캄보디아로 보내신 것이 아니었다. 만나는 선교사님들과 사람들을 통해, 아이들을 통해, 또 함께한 팀을 통해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셨다. 선교지라는 낯선 환경 안에서,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통해 나의 좁음을 깨닫고 넓은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라고 이곳까지 나를 보내신 것이었다.

선교사님들의 사역은 다 각각 다양하고 특징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덜 중요한 것이 없었다. 한 분 한 분 사역의 모습들이 하나같이 다 귀했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선교를 헌신하시게 된 첫 마음과는 달리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 그럼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극복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모습 속에서, 캄보디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힘 있는 손과 발과 다리를 보았다.

아이들의 호수같이 맑은 눈동자, 손 한번 흔드는 인사에도 까르르 웃으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밝음은 마음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었다. 극한 가난 속에서도 착하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성도님들의 얼굴 속에서 나사렛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던 예수님을 보았다. 풀도 별로 없는 벌판에서 비쩍 마른 몸으로 묵묵히 풀을 뜯는 흰색 소들, 흙먼지를 하도 뒤집어써서 갈색인지 초록색인지 모를 잎을 가지고도 불평하나 없는 나무들까지.

모든 것들이 나만이 옳다는 독선과 옳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좋아했던 조급함과 교만함을 일깨우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기 위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셨다. 그런 주님께서도 인간을 바로 정죄하고 심판하지 않으시고 지켜보며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떤 잘못을 보면 아니,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정죄하고 심판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심판을 보류하시듯, 나도 판단을 유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가진 기준에 못 미친다 할지라도, 상대의 상황과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넉넉함.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다림. 그분의 좋은 점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대함,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자세여야 한다. 먼저 판단하기보다 먼저 사랑할 수 있고 기다리며 기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삶의 지경이 넓어져 하나님 나라도 확장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