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과 대립하는 바리새인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 전통에 충실하여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고 했던 이들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던 이들이다. 그러나 율법 준수 여부만 중요시 했을 뿐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것은 소홀히 했다. 그러다 보니 겉치레 신앙으로 전락하여 예수님께 눈먼 인도자, 회칠한 무덤이라는 신랄한 책망을 받았다. 성경 곳곳에서 그들의 체면과 위선의 모양새를 찾아볼 수 있다.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왔다.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식사 시간을 어지럽게 했다. 사람들이 여인을 더러운 벌레 보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인은 용감하게 꿋꿋이 나아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온 정성을 다해 주님의 머리 위에 향유를 부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은 그녀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불결한 행위로 치부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마저 불신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체면과 위선으로 영혼의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 판단과 자만의 두꺼운 껍질 속에 갇혀버린 결과였다. 이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의 공동 창설자인 바실레아 슐링크의 자전적인 고백이다.

나는 한때 아주 히스테릭한 사람과 한 집에 산 적이 있다. 이기심과 시기심,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진 이 사람으로 인해 나는 심한 타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떤 것을 객관적으로, 즉 올바른 눈으로 볼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비뚤게 보았다. 그리하여 비난하고 화를 거침없이 폭발시키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을 망쳐버렸기 때문에 내 심중에는 적개심이 생겨났고 언젠가는 한바탕 해버리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느 날 나는 비통한 심정으로 주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도움을 청하였다. 나는 지금과 같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주님께 물어보았다. 그때 갑자기 주님의 손가락이 나타나 지적하는 것 같았는데, 그 손가락은 그토록 나에게 괴로움만 안겨주던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변화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너다. 너는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네 잘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십계명의 대지(大旨)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냐? 그 사람에 대한 너의 사랑은 어디에 있느냐? 그 사람 역시 네 이웃이 아니냐? 너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사랑을 하지 않는 죄가 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너는 분노로 가득차서 원한의 감정까지 품고 있다. 성경에서는 원한의 감정과 남을 용서하지 않는 것을 가장 무서운 죄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지 않느냐? 너의 심중에서 비난의 소리가 멈추지 않는 것은 사탄 곧 참소자를 너의 측근으로 삼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중대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너는 이 곤경을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잘 극복해야 되는 것인데도, 지금까지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재판장으로 너에게 묻겠는데, 과연 너의 용서와 사랑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잘못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죄를 짓고 실족할 때마다 나는 항상 사죄의 사랑을 베풀었는데, 너는 그러지 못했다. 이제 너는 무엇보다도 용서하지 않고 원한을 가슴에 품은 이 큰 죄를 회개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네 마음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때, 너는 나의 십자가 밑에 나아와 내가 흘린 피로 죄 사함을 받을 것이다. 나의 피가 너를 순전하고 정결케 하리니, 그 후로 너의 완고한 심령은 부드러워지고 비통 대신에 사랑이 흘러나오리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면 영혼의 눈이 멀어버린다. 또한 체면과 위선과 오만의 껍질을 깨트리지 못하면 하나님도 이웃도 바로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얼마나 받고 살아 왔는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많이 참고 견디셔야 했는지, 그 인내와 자비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수 없다. 아무리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를 열심히 하며 봉사를 도맡아 해도 결코 진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로 한 날을 살아가면서 내 죄를 위해 울기는커녕 여전히 상대방의 티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나를 향해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을까? “미선아, 내가 너에게 이를 말이 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7:40).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기 위해 체면과 위선과 이기심을 훌훌 벗어버리고,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커가는 만큼 내 안에 용서의 기쁨도 더 커갈 것이다. 비난과 편견의 비바람이 불어 닥쳐도 용감하게 주님 품으로 뛰어가리라.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