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슴도치의 일기

작은 고슴도치가 있었다. 아직 젊은 고슴도치는 가시가 자라고 있었는데, 자신의 가시가 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고슴도치들의 가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이의 가시가 또렷이 보이자 불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 가시에 한 번 찔리면 크게 다칠 것 같으니까 피하자. 저 가시는 왜 저렇게 생겼지? 이해가 안 되네. 저 가시는 내 가시보다 뾰족하지 않으니 안전하겠군. , 저렇게 가시가 길어서 어쩌지, 다른 고슴도치들이 많이 다치겠는데.’

부드러운 털은 숨긴 채, 다른 고슴도치들이 가시라도 세울라 치면 어김없이 견제하듯 가시를 추켜세웠다. ‘나도 가시가 있다고. 나도 가시를 추켜세울 수 있다고. 너만 가시가 있는 게 아니라고.’ 때론 방어하고자 가시로 덮인 몸으로 이웃에게 부딪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상대방과 함께 피를 흘리면서도 혼자 억울해 했다. ‘나는 피해자야. 난 잘못이 없어.’ 젊은 고슴도치는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고, 그를 위한 방법을 생각했다. 때론 작은 동굴로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다른 고슴도치들이 가시를 추켜세우든, 세우지 않던 상관이 없었다. 살아남고 싶은 것이 이유였다.

동굴에 갇혀 꽁꽁 얼어서 아슬아슬했던 마음이 따스한 봄 햇살에 녹아내렸다. 시린 아픔들로 겹겹이 쌓여 얼어버린 마음에, 고통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지나온 눈물과 고통의 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철부지 고슴도치에게 하나님은 숨겨둔 보루 같은 선물로 대신하셨다.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주님은 일하고 계셨고, 고개를 들 수 없는 고슴도치를 기억하시고 보듬으셨다.

꽤 오래전부터 영성생활에 싫증을 느끼며 주님의 길 따라 가는  귀한 길을 허락하신 주님을 원망하며 꿈도 소망도 없는 낙오자같이, 삶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부정한 채 엎치락뒤치락 했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사건을 허락하시고 그 속에서 원리를 깨닫도록 하셨다. 때론,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고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 마음앓이를 하며 눈물을 삼켰다. 눈물만 삼킨 건 아니다. 분노, 미움, 앙갚음하고 싶은 어둠도 함께였다.

얼마 전, 마음으로 신뢰하고 있던 한 분과 마찰이 일어났다. 평상시엔 훌륭하고 좋은 장점을 많이 갖고 계셨기에 잘 따르고 대화도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듯한 언행을 하여 몹시 화가 났다. 주체할 수 없이 미운 마음이 엄습했다. 후에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며 대화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자매님은 스스로를 완벽하게 여긴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어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당혹스러웠다. ‘내가? ?’ 함께 살고 있는 분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니 슬프고 답답했다. 원래 나는 소심하며 자신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 생각들 때문에 쉽게 뛰어들지 못할 때가 많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머리로는 실패를 뛰어넘어야지 하면서도 실제 닥치면 감당을 못한다. 생각에만 그치기가 다반수다. 그런 내게 스스로를 완벽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품상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 스스로를 완벽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데요. 제 이미지가 강하게 보여도 얼마나 연약한데요. 자존심이 좀 세서 그렇죠. 그건 오해예요.” 상처받기 싫어서, 초라한 자신이 싫어서 작은 동굴 속으로 숨다보니 다른 분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그분들의 잘못된 편견이 아닌 내 잘못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행히 대화를 하면서 서로 오해했던 부분들이 풀리고 더 좋아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다.

내가 상처받을 것이 두렵고 힘들면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려고도, 보듬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데 왜 아무도 몰라주냐고 조용히 아우성칠 뿐,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고 사랑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다른 고슴도치들의 가시는 더 날카롭고, 내 몸에 닿기만 해도 상처를 입을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숨어버린 지난날들. 정작 자신의 가시는 또렷이 보지 못했던 젊은 고슴도치는 자신을 지키고 싶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다.

내 가시든 다른 가시든, 찔려도 덜 아프도록 내 가시도 정리하고 다른 이의 가시도 덕과 배려로 잘라주고 보듬어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 주님은 작은 고슴도치인 나의 소원을 아시기에 연약함을 강인함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가시로 뒤덮어 나를 보호하기보다는 가시로 덮인 다른 이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꿈꿔본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