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즈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150여 년 전, 영국 웨일즈 하노버교회는 한국 개신교에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목사를 파송했다. 그러나 토마스 목사는 평양 대동강 변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조선 관군에 의해 칼에 찔려 순교를 당했다. 그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한국인 선교사가 현재 영국의 하노버교회를 섬기고 있다. 담임목회자인 바울선교회소속 유재연 선교사님과의 인연으로 12명의 청년들과 사역자들이 그곳을 찾았다.

한국교회의 모태인 하노버교회는 1970년대 한국의 시골 예배당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걸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 나는 나무 바닥, 니스 칠이 벗겨진 장의자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성전의 벽에는 교회를 담임했던 훌륭한 목사님들에 대한 기념비가 둘러져 있었다. 한켠에 토마스 선교사님의 기념비도 보였다. 담임목사의 아들을 선교사로 파송한 뒤 목숨을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은 성도들의 반응을 비석 속에 적힌 성경구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17:11).

10개 국어를 구사하며 세계 선교를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장래가 촉망한 청년 선교사. 그의 죽음 앞에서 가족과 성도들은 얼마나 허망하고 슬펐을까. 헬라어로 적힌 마지막 문장은 교회가 어떻게 토마스의 죽음을 받아들였는지 말해준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아버지 토마스 목사님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18년간 이곳에서 목회를 감당했다. 아들 저메인 토마스의 죽음을 통해 언젠가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볼 것을 믿으며 말이다.

예배당에 앉아 기도드리는 나 자신이 그 열매임을 생각하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기쁨에 넘치는 감격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 서기 위한 엄숙함이었다. 한 말씀만을 마음속에 되 뇌이게 되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저녁에 숙소에 둘러 모여 선교사님께 웨일즈의 자세한 영적인 상황을 듣게 되었다. 웨일즈 주민들은 비교적 시골에 살고 있지만 세계를 제패했던 대영제국의 국민이라는 자존심이 살아있고, 교양과 기품이 넘치며 약자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린 그들의 영혼은 온갖 미신과 주술행위들로 사단에게 강탈당해 있었다.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고 자신의 이성과 쾌락을 좇아 살아가며, 그나마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마저 절대적 주일성수와 십일조신앙도 갖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특별히 사단은 웨일즈가 부흥의 땅이라는 것을 알고 그곳에 온갖 이단신앙을 가져와 뿌리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서도 선교사님은 희망을 잃지 않고 계셨다. 어떠한 강퍅한 심령이라도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다시 웨일즈의 부흥이 오길 꿈꾸고 계셨다.

우리 팀도 그 믿음에 화답하여 거리에서 찬양전도를 하고 교회들을 방문하며 웨일즈의 재부흥을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이 나라가 지금은 선교지가 되어 황폐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오래된 교회 건물에서 십자가만 떼어낸 뒤 다른 용도로 쓰고 있는 건물들을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교회나 기도모임에는 노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불씨는 있었다. 우리가 거리에서 찬양할 때마다 함께 손들고 예배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교회의 산 기도에 도전받아 매달 한번 씩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영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영국과 웨일즈를 포기하지 않으심을 확신하며 함께 기도할 때 태양이 주님의 얼굴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영국에 다녀온 뒤에도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거리에서 찬양하며 준비해 간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영어실력이 부족하여 쭈뼛대며 나누어 주고 있을 때 선교사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말하는 한마디가 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꼭 저들을 축복하며 전도지를 나눠주세요.”

그 말씀을 하시는 선교사님을 보며 토마스 선교사님이 떠올랐다. 150여 년 전 조선에 와서 순교하시기 전 성경을 주실 때 토마스 선교사님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주님, 이 성경책 한 권이 조선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을 믿습니다. 저의 발걸음이 한 사람에게라도 구원을 줄 수 있다면, 제가 흘리는 피가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오늘 저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간절한 소원과 확고한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임을 배운 귀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나의 삶에 현장에서 하나님께 드릴 순종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말씀카드 한 장을 만들 때에도, 아이들에게 작은 전도지 한 장을 건네줄 때에도, 믿음만큼은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리라. 작은 일 하나에도 큰 믿음을 드리는 순종의 전문가로 변화되어 복음의 증인들과 함께 기뻐할 날을 소망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