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은혜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덥다. 선풍기 없이 작은 방에서 두 해를 지내면서 작년엔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직까지 선풍기를 살 계획은 없다. 낮에는 창문을 열고, 미세한 바람이 나오는 탁자용 작은 선풍기를 사용했다.

한 여름 밤은 길고도 무더웠다. 독서나 활동적인 일은 줄어들고 무더위로 잠을 뒤척이는 날이면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랐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보다 후회와 상실에 푸념도 이어졌다. 얼마 남지 않은 30대를 돌아보면서 시간만 흐르고 남긴 것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아 슬픔이 몰려왔다. 스스로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충분한데, 마음이 무겁다. 무더운 여름의 열기마냥 헉헉대기만 하고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지 못한 나날들로 인해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철저했고 유능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 역시도 언행일치의 삶보다 빈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니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하다.

 


요즘 예수님의 시선이 머물러 주시기를 소망하던 내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선물이 찾아왔다. 교회에서 성전건축 “40일 작정 새벽예배가 진행 중이다. 3주 전 주일, 주보를 살펴보는데 작정 새벽예배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섬광이 스치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졌다. 주리고 목마른 내 영혼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처럼 느껴질 만큼 간절함이 일어났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새벽에 차편을 마련해 주면 참석하고 싶다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맘 졸이며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다고 하셨다.

실망이 되었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주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맡기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작정기도 하루 전 날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차량봉사를 해 줄 분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듣는 순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깊이 감사를 드렸다.

 


5시 새벽예배에 참석하려면 350분쯤 일어나 준비하고,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해야만 제 시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새벽예배에 참석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수면부족과 장거리 이동으로 불평이 나올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하다. 이른 새벽잠을 줄여가며 차량 봉사를 기쁨으로 감당해 주시는 전도사님을 보면서도 절로 은혜가 되고 소망이 샘솟는다.

신비스럽고 큰 체험이 아닐지라도 요즘 나에게는 소소한 순간순간이 기적의 연속이다. 작정기도를 나갈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것도, 먼 거리를 오고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자연 만물들의 싱그러움도 기쁨이며 작은 기적이다. 지저귀는 새소리들도 마치 그동안 영적 곤고함에 빠져있었던 나에게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기도하라는 멜로디처럼 들려 부끄러우면서도 겸허해진다.

귀신들린 딸의 병을 고쳐달려고 몸부림치며 매달리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40일은 내게 그런 시간이다. 내게 주실 눈에 크게 띄는 큰 체험이 없다 할지라도,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내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친히 나를 은혜의 바다로 이끄실 것을 알기에 또한 감사하다. 비록 몸은 조금 고단해도 40일은 내게 귀한 선물이며 축제의 향연이다. 아침마다 새롭고 성실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난 기쁨으로 다시 소망의 길을 걷고자 한다. 큰일을 이루지 못해도 소박하게 주님과 함께 하는 이 걸음이 내게는 큰 기쁨이요 은총이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