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로 무장하여 빛을 발하라
   

설교 판단

기도원에 가거나 어느 목회자가 기복적인 설교를 많이 할 때 말씀이 어떠셨어요?” 하면 대부분 설교를 판단하면 안 된다. 판단하면 자신의 신앙만 손해 보는 것이다.”라는 답을 하거나 듣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주의 종을 판단하면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대부분 목사님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큰 죄로 알고 있다. 판단하는 것과 분별하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판단하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율법사들 모두가 다 종교지도자들인데 예수님께서 항상 그들을 판단하면서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조금 치우친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 보통 영적으로 더 많이 성장하면 판단하는 단계를 벗어나서 다 알아듣는 것처럼 생각 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물론 똑같이 비방을 한다거나 아니면 혈기를 내면서 한다거나 교만한 심정을 품고 설교에 대해 말을 한다면 안 된다. 그런 죄성의 지배를 받으면서 한다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르게 분별하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 기독교 역사 가운데 훌륭하게 증거했던 분들, 또 설교하신 분들을 보면 다 잘못된 것을 판단해서 이야기하셨다. 그것도 다 잘못이라고 해야 될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쪽만 알 면 안 된다.

우리가 전도를 하고, 또  설교나 상담을 통해서 증거 하려면 항상 빛과 어두움을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혼동에 많이 빠지는 것 같다. 거기서 말씀하시는 그 판단은 다른 사람들을 악심을 품고 판단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비방하거나 모욕하거나 후욕하거나 괴롭히거나 무시한 것을 판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죄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가운데서, 또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온유하고 자비롭고 인내하는 마음을 품고서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얘기하는 것은 괜찮다. 설교하신 내용도 안타까워하면서 얘기하는 것은 괜찮다.

그런 것이 고쳐지셨으면 좋겠네요. 이 기도원에서 집회 인도하시는 강사님들이 거친 말이 없어지면 듣는 분들이 더 큰 은혜를 받을 텐데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상당히 큰 유익을 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말씀도 되는 것이다.

다만 속에 죄성을 품고 이야기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러나 건전하게 판단하고 분별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전도할 때 필수적인 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회칠한 무덤이라고도 하시고, 독사의 자식이란 표현까지도 하시면서 진리를 증거하셨다. 거기에 혈기를 품고, 교만한 심정을 품고, 아집적인 마음을 가지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으셨다. 그런 어두운 마음을 품고 하는 것은 범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혈기를 가지고 한 것은 분명히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온유한 심정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이나 동정하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비춰보면

실제 생활하고 있는 가정이라든가, 직장이라든가, 학교라든가, 교회라든가, 그런 생활 구석구석을 한번 잘 반성해 보면 우리가 죄를 범하는지 말씀을 따라가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환경이고, 또 마음의 구석구석을 잘 반성해 보면 빛과 어두움에 대한 진리를 많이 깨달을 수가 있다.

부모님을 만났을 때, 형제자매를 만났을 때, 친구들을 만났을 때, 과연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는 말이나 행동이 조금씩이라도 흘러나오는지, 그런 것을 잘 따져보아야 한다. 깨끗한 생활,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을 잘하시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서 발견해야지 딴 데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것처럼 봐야 한다. 생각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의지 같은 것을 다 살펴봐야 한다.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 이웃사람들을 만났을 때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라든가, 또 어떤 얘기 거리를 가지고 말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다 검토해 보면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 어두움에 속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좋지 않은 설교를 들을 때, 누구한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 무시를 하거나 교만한 사람을 대할 때, 과연 우리의 마음속에 또 우리의 말과 행동과 표정 속에 무엇이 나타나는지, 거기서 빛과 어두움을 공부하면 100점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성도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케 하시는 것은 불신자들을 구원받게 하셔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교훈을 실천하는 우리의 행실을 사람들에게 보이라는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증거되기 때문이다. 그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기하게도 천국의 빛은 우리의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다. 천국의 빛은 우리의 인격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비인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빛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빛이 흐려진다. 우리의 인격 즉 영성이 예수님을 많이 닮았느냐 조금 닮았느냐에 따라 보좌에 가까이 사느냐 멀리 사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보좌에 가까이 있는 성도일수록 빛이 밝다. 이분들은 하나님의 빛을 더 많이 받아서 반사한다. 천국의 빛은 인격적인 능력이 포함된 빛으로 세상의 빛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소금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교훈, 즉 빛된 진리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착한 행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역할을 미치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다시 말해서 교만하고 태만하고 음란하고 아집하고 질투하고 포학하고 거짓하고, 또한 육신의 애정과 욕망에 따라서 어두운 마음과 행실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되면 소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빛된 행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타락한 삶을 회개하고 돌이키게 되면 소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어두움에서 건져내는 것을 상징적으로 소금이라고 표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로 튼튼하게 무장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 빛이 강력한 매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예수님의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하게 된다.

또 대단한 힘을 내는 것이 바로 진리의 빛이기 때문이다. 진리로 무장되었다면, 마귀들이 그 진리의 빛을 빼앗기 위해서 따라올 테고, 천사들도 그 매력 때문에 열심히 따라 다닐 것이다. 보혜사 성령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도록 될 것이다. 그리고 빛을 좋아하는 성도님들도 다 그 매력 때문에 가까이 오시게 될 것이다. 가장 강력한 매력은 바로 진리의 빛이다. 우리의 모든 생활 가운데 늘 진리의 향기를 나타내야만 한다.

축복을 전하라정리 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