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향한 프랜시스의 강렬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 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형제애와 자연 사물에 대한 깊은 사랑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이기에 프랜시스는 영혼이 있든 없든 모든 창조물과 화해를 이루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순교의 갈망

어느 인간의 혀도 프랜시스가 그리스도를 향해 불태운 열정적인 사랑을 묘사할 수는 없다고 보나벤투라는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그의 심중 깊숙이 존재해 있었다. 사랑의 불길로 자신이 예수님으로 완전히 변모되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홀로 지내시며 단식하셨던 주님을 본받아 매년 40일간 단식을 했다. 그러다가 자주 탈혼하였다. 자기의 육체는 엄격한 단식으로, 자신의 영혼은 주님께 대한 타오르는 갈망으로써 항상 희생하기를 즐겨하였다.  


그의 사랑의 열정은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어떠한 것도 영혼의 구원 문제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고 말하곤 하였다.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평화를 빕니다.”(10:12)라는 인사말을 하도록 했고, 어디서든지 어떤 돈도 받지 말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가르쳤다. 그는 비록 행색은 몹시도 초라했지만, 만나는 모든 남녀 행인들에게도 열심히 평화를 전하였다. 그러자 점차적으로 복음을 꺼려하던 이들도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며 영원한 구원을 갈구하게 되었다. 형제들을 멀리 보낼 때마다 평화의 사신이 될 것을 당부하곤 하였다.

또한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본받고자, 하나님께 자신을 산 희생 제물로 바치고자 갈망했다. 그 열망이 무척이나 강해 복음의 불모지인 모슬렘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리아를 몇 차례나 방문하였다. 12196월 중순에는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11명의 형제와 전도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사라센 군대들에게 잡혀 큰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집트의 술탄 앞에 끌려간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가운데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들겠노라고 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놀라움과 큰 감동을 받은 술탄은 이집트 온 땅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할 것을 허락하였다. 허울만 좋은 이름뿐인 십자군이 수차례 칼과 병거로 차지하려 했던 그 땅을 사랑과 겸손으로, 죽음을 각오한 담대한 용기로 정복했다.      


 

c7c1b7a3bdc3bdba.jpg고난에 대한 사랑

그는 예수님과 십자가를 명상하며 고독과 침묵 속에서, 무엇보다도 관상생활에 힘썼다. 그리고 자신이 큰 죄인임을 고백하며 통회의 기도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압도되어 아시시 거리를 울며 다니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왜 우느냐?” 물으면 오른 손을 높이 쳐들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못 견디게 합니다.” 하였다. 십자가 고난 뒤에 숨어 있는 아가페 사랑을 느끼고 감격했던 것이다. 그저 단순히 복음적 고난의 증표인 십자가 지는 삶을 받아들인 그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하고, 고통하는 자들 특히 한센병 환자들을 찾아갔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 형제의 고통일지라도 무심하지 않았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으로까지 이어졌다. 모든 자연을 관조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신적인 것으로 보았다. 태양과 달과 별, 물과 불과 흙, 동식물들 모두가 그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말씀이었으며 신앙 차원에서 모든 것이 형제와 같았다. 형제인 불과 태양, 자매인 달과 별들과 물, 특히 자매인 죽음까지도 사랑했다. 피조물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생물과 무생물까지도 모두 사랑했다. 그는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참 아들이었다(8:19).

그는 육체의 질병으로 오는 고통을 오랫동안 겪어야만 했다. 젊어서는 열병을 앓았고, 수많은 단식과 소량의 음식에 만족했으며, 그 음식에조차 재를 뿌려 먹고, 잠을 제대로 안 자며 기도했다. 맨살 위에 거친 옷을 입은 채 몇 년씩 지냈으며, 요리한 음식은 입에 대지 않으려 했다. 복음을 전파하러 다니다가 지치게 되면 맨땅을 침대 삼았고, 나무나 돌조각을 베개로 삼았다. 정신과 육체의 순결을 지향하는 열의 때문에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이 당나귀 형제야하면서 편태를 가하거나 깊은 눈 속에 벌거벗은 몸 그대로 구르기도 했다. 육정의 더러운 불꽃으로부터 자유롭고, 내적 죄의 본성으로부터 해방을 받고자 하는 뜻에서 엄격한 고행생활을 한 것이다.

극도로 쇠약해진 몸과 실명 등 여러 질병으로 고통이 심했으나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도리어 고통들을 자매라고 부르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에 대한 참여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명상하는 중에 자신의 고난도 그리스도와의 관상적 합일을 이루고,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비록 그가 눈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배앓이, 비장과 간장에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벽이나 담에 몸을 기대지 않고 시편을 바쳤다. 그리고는 모자를 늘 벗고, 눈길을 다른 데에 두지 않고 분심 없이 성무일도를 바쳤다. 성무일도를 위해 한 자리에 서 있는 동안 내리는 비로 인해 흠뻑 젖어버릴 때도 있었다. 그는 비가 아무리 내려도 성무일도를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어느 날엔가 우리가 먹는 음식과 똑같이 벌레의 먹이가 될 육체가 평화 안에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그 어떠한 평화와 고요도 즐기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입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보다 영혼의 양식을 끊임없이 갈구하였던 그는 비록 육체는 쇠하더라도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언제나 원하였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깊으면 깊어질수록 고난에 대한 갈망도 더 커갔다. 일생 고난을 동반자로 삼았고, 십자가의 고난을 갈망했던 그는 주님과 똑같은 오상이 몸에 새겨지는 놀라운 복을 누렸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