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균형감각

성경은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세우실 때,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면 형통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형통이란 단어는 반드시 성취된다.’는 뜻이다.

육상 선수가 아무리 잘 뛰어도 트랙을 밟으면 실격을 당한다. 오직 목표를 향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정도(正道)를 가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룻밤 잘 때 보통 50번을 뒤척인다고 한다. 어른은 밤새 뒤척이며 자면서도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종종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진다. 그것은 어른들은 균형 감각이 있어 뒤척일 때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뒤척이지만, 아이들은 균형 감각이 없어 한쪽으로만 뒤척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기준점을 넘어 넘어지고 만다. 그래서 성숙할수록 영적인 균형감각을 가지고 정도를 지켜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을 지켜 영적 미성숙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성경은 우리에게 소금이라고 하셨는데, 소금은 적당히 사용해야만 제 맛을 낸다. 소금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당히 사용할 때 값진 것이다.

어거스틴은 신학자로, 수도자로, 목회자로 살면서 그 많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정도를 가라는 것이었다. 한 쪽은 불이고, 한 쪽은 물인데 불에도 데이지 않고 물에도 빠지지 않는 한가운데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므로 그 많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이웃을 사랑하고, 스승이면서도 여전히 주님 앞에서는 학생이고,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면서 여전히 제물의 삶을 사는 것이 그의 사명의 해법이었는데, 그 모든 것에 치우치지 아니하는 삶을 살아갔다.

너희가 어찌하여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고 엘리야가 질타한 바 있는데,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진리와 비 진리에서 과감히 신앙적 결단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애매한 중간 입장을 취하라는 것도 아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 속에서 정도를 가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욕심을 피해야 할 것이다. 욕심이 생기면 죄와 사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어느 한문교수의 ’()자에 대한 한문해석이 좋은 교훈이 된다.

(지날 과)에는 지나다, 넘다, 심하다, 잘못하다, 실수하다.’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들은 모두 지나다에서 나온 것이다. ‘지나는 행위는 어떤 지점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통과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통할 통)과 함께 쓰인 通過’(통과)관통하여 지나다.’라는 뜻이고, (넘을 초)와 함께 쓰인 超過’(초과)넘어가다라는 뜻이다.” 결국 정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지나다라는 행위는 어떤 기준점을 지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일정한 한도나 정도를 넘다.’라는 의미가 생긴다. ‘過分’(과분)분수를 넘다.’라는 뜻이며, ‘過度’(과도)일정한 정도를 넘다.’라는 뜻이다.

지나다라는 행위가 어떤 기준점을 넘어서 계속 진행되면 심한 정도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에는 심하다라는 의미가 생긴다. (힘쓸 로)와 함께 쓰인 過勞’(과로)심하게 힘을 쓴 것을 나타내며, (마실 음)과 함께 쓰인 過飮’(과음)심하게 마시다.’라는 뜻이다.

지나다라는 행위가 어떤 기준점을 넘어서 계속 진행되면 심한 정도에 이르게 되고, 심한 정도가 더해지면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게 된다. 이로부터 실수하다, 잘못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실수할 실)과 함께 쓰인 過失’(과실)실수, 잘못이라는 뜻이고, (그릇될 오)와 함께 쓰인 過誤’(과오)잘못하여 그릇됨이라는 뜻이다. (허물 죄)와 함께 쓰인 罪過’(죄과)허물을 짓고 잘못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 자가 들어가면 다 좋지 못한 것이 된다. 과욕(過慾), 과소비(過消費), 과민반응(過敏反應), 과식(過食), 과중(過重), 과속(過速) .

모든 일에 정도를 벗어나면 기준점을 넘게 되고 그러면 실수가 되고 죄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믿는 것에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 너머에 계신 크고 놀라우신 분인데, 그분을 우리의 이성과 상식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인데 시공 안에 갇혀 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과신한다면 이는 큰 착각일 것이다.

하나님은 퍼즐을 모아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다 알도록 계시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는 각자 받은 것을 모아 연합하여 그분을 더 알아갈 뿐이다. 내 것만 전부라는 과신에서 벗어나 조용히 남의 것도 돌아볼 때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