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분명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 계신 부모님이 잠시 귀국하여서 온가족이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는데 대화의 주제에는 진우가 빠지지 않았다. 진우와의 추억은 가족 상봉시마다 단골 대화내용이었다. 우리는 진우를 통해 사랑을 나눠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우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심약한 분이셨는데 첫째를 낳고 얼마 뒤부터 심한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셨다. 진우가 태어난 뒤에 엄마의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이를 하루 종일 깜깜한 방에 방치해두기도 하고, 등에 업고 밤새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나님은 모자를 교회로 인도하셨고, 진우는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너무 눕혀 놓아서 납작해진 뒤통수, 기저귀를 오랫동안 갈아주지 않아 다 헐어버린 살갗을 보다 못한 교회에서 아이를 봐주기 시작했다. 토요일 낮에 집에 데리고 와서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면 데려다 주었다. 아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고 뿌듯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자 다들 지치기 시작했다. 아이 한 명에게 여러 사람이 수고하고 공을 들이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주일 중 유일한 낮잠시간이었던 주일 오후 시간을 포기하기 싫었다. 잠 좀 재워보려고 하면 눈을 말똥말똥 뜨고 놀이터에 가자고 조르는 진우가 밉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귀찮게 했다. 순간 얄미운 마음이 들어 머리를 콕 쥐어박은 적도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말엄마라지만 아이의 놀이와 식사, 목욕까지 책임지는 건 무리였다. ‘모타님, 모타님하며 뒤를 쫓아다니는 진우를 제일 예뻐했던 아버지도 주일저녁마다 심하게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서 집에 데려다 주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그때 난 참 많이 생색내고 다녔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우한 아이를 돌본다며 떠들고 다녔고, 힘들다고 투정도 잘 부렸다. 안 그래도 집안에 어려운 일이 많은데 큰 짐을 더 지워주시냐며 하나님께 불평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진우를 불쌍해서 봐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진우가 우리를 돌봐주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마음이 지쳐 가라앉기 쉬웠다. 진우는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아이를 돌보며 온가족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사랑을 꽃 피울 수 있었다. ‘누나, 엄마, 모타님하며 이름을 불러줄 때, 사랑받는 기쁨이 지친 어깨를 세워주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마음이 우울해지기 쉬운 때에 사랑을 실천하느라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받았음이 드러났다. 긍휼히 여겨주었다고 으쓱했는데, 긍휼히 여김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불평했는데 사실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음을 발견했다.

사람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기에 늘 내가 더 고생하고,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속상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덕분에보다는 때문에가 나온다. 하나를 주고는 열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열을 받고는 하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참느라 힘든 것만 생각하지, 상대도 나를 참아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늘 주는 사람이고, 상대는 받는 사람이다. 그렇게 주는 것도 없이 손해의식에 사로잡혀 참 불행하게 사는 것이 인간이다.

진우의 교훈으로 삶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볼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니 내가 주고 있는 사랑보다 받고 있는 사랑이 많다는 것이 보였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참 많이 지고 살아왔다. 내가 참은 인내의 시간보다 나를 참아주신 세월이 길었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베푼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음을, 그래서 지금의 내가 존재함을 깨닫는다. 속상하다고 울고불고 하던 그 일도 나를 온전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한 선물이었다. 그땐 볼 수 없던 것들이 은총 가운데 서 보니 제대로 보인다.

세상에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사람 인)이 말해주듯 사람은 서로 지탱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나만 고생했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준 사랑보다 받은 사랑이 적다고 투정부리지 말자. “지금은 거울을 통해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보게 될 것”(고전13:12)이라는 성경 말씀처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하나님의 사랑은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분명 과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