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교회의 한 청년과 영화를 보기 위해 부천역에 갔다가 중고서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오래전 은혜롭게 읽었던 한나 허나드의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라는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는 겁쟁이가 목자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목자는 길을 떠나는 겁쟁이에게 고통슬픔이라는 길동무를 붙여주시며 당부한다. “두려워 말아라, 겁쟁이야. 단지 믿기만 해라. 약속하건대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거다. 슬픔과 고통과 함께 가도록 하고, 만일 지금 당장 그들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네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곳에 있을 때에라도 그들의 손을 꼭 잡으렴. 그러면 그들이 너를 이끌어서 정확히 가야 할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길을 가는 겁쟁이에게 쓴 뿌리, 우울, 원망, 자기연민이라는 대적들이 따라와 길을 막고 끊임없이 그를 조롱하며 비웃으며 추격한다. 겁쟁이는 할 수 없이 고통슬픔이라는 두 친구의 손을 붙잡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그들은 친숙한 친구가 된다. 그들은 결국 겁쟁이의 연약한 다리를 날쌔고 단단하게 하여 저 높은 곳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하는 견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금 나와 같은 길을 걷는 희귀질환 모임인 헌팅턴 환우회가족들은 고통과 슬픔을 지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은 이 분들 중에 대다수가 사랑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님은 우리 가정을 통해 이 병으로 홀로 아파 울고 있는 가정들을 모으고 함께 위로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도록 역사하셨다.

지난 4월경 희귀난치성 질환인 헌팅턴 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아이를 촬영한 내용이 지상파 방송 뉴스와 취재파일 인터넷 기사로 나왔다. 두 차례에 걸쳐 헌팅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의 아픔과 애로사항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가족도 쉬쉬숨 죽여 아파하는 헌팅턴병이라는 제목 하에 쓰인 기사 내용의 일부분이다.

헌팅턴병은 우성 유전으로, 환자는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이 병을 앓았던 사람입니다. 자녀에게 치명적인 퇴행성 뇌질환을 물려줄 확률이 50퍼센트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병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증상이 심한 희소난치병임에도 불구하고, 루게릭병을 비롯한 근육병 환자들과는 달리 병원비 90퍼센트 경감 혜택만 받고 있다는 것이 헌팅턴병 환자 가족들의 설명입니다.

미국에는 환자가 많은데 지금 한국에는 등록된 환자 수가 많지 않고, 또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이 병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병에 비해 지원을 못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병은 걸렸어도 가족들이 공개하지 않고 숨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환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렵거든요. 환자 수가 적다 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헌팅턴병 환우회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회원 수는 110명에 불과합니다. 헌팅턴병처럼 드러내기 어려운 유전질환 때문에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면, 보건복지부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회안전망을 책임지는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이자 건양대병원에서 희소난치성환자들의 유전상담을 하고 있는 김현주 교수의 이야기다. “희귀질환의 경우 효율적인 치료제가 없을 때, 환자들을 잘 관리해주는 것이 약만큼 소중해요. 약은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받는 도움을 통해서 그래도 사람답게 조금 편안함을 느끼면서 살 수 있잖아요. 효율적인 약이 없을 경우에는 그 사람의 생활을 조금 더 편하고 인간답게 하는 데 쓰는 비용을 아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병은 헌팅턴무도병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걷거나 움직이는 동작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손과 발, 팔과 다리를 조절하는 능력이 점차 사라져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헌팅턴병 환자들은 이런 움직임 때문에 요양기관에서도 기피대상이다. 헌팅턴병 환자들을 보살피는 부담은 결국 가족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가족들은 이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 기사가 나간 뒤에 환우회 모임에 몇몇 가정이 가입했다. 소개하는 글에서 한 분은 남편과 두 아들이 이 병으로 투병하다 남편은 11일 전에, 큰 아들은 3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은 둘째 아들을 간병하고 있다는 사연이다. 한 분은 25세 청년인데, 최근에 엄마가 이 병 진단을 받았는데 어떻게 간병해야 할지 그리고 자신에게 이 병이 유전되지 않았는지 몹시 걱정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16년 전 남편과 아이가 이 병을 진단받던 당시가 떠올랐다. 세상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우리 가정은 이 병으로 주님을 만났다. 이분들 또한 주님을 꼭 만나기 소원한다. 주님을 만날 때 고통과 슬픔이 친구가 되어 삶의 모든 어려움과 시험과 갈등을 기쁘고 넉넉하게 이기며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소원한다. 죄악과 환난과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사랑과 승리로 반응하여 그것들을 다 극복하고 영원히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이 될 수 있기를 말이다.

올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73:28).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더없는 복이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게 길동무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가장 안전한 요새요 피난처이신 주님께로 이끄는 선한 도구로, 위로자로 사용되기를 다시 한 번 결단해본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