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강에 점령당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의 평화로 지배됨이 부르심의 목적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에서 벗어났다면 이미 슬픔을 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불안과 공포로 배불러 있을 수 있다. 겉은 멀쩡한데 영적으로 파산상태일 것이다. 영적 묘지일 수 있다. 감사가 바닥난 위험한 상태, 불명예로 낙인찍힌 성경의 사람들처럼(사울 왕, 아간) 되어질까 두렵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와 한 몸이 되게 하셨고, 그의 평화를 누릴 특권을 받았다.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라는 영광까지 얻은 것이다. 그의 통치영역에서 살아가는 가족이다. 예수님의 평화의 가슴에서, 평화를 누림은 응당 받을 축복이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몸을 침대에 눕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온전히 눕혀보라는 말이다.
 
‘인생감옥’과 ‘인생감탄’은 예수님과 연결해 사는가의 여부에서 날카롭게 갈라진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기에 태산이 되었다는 교훈이 있다. 고난, 공포, 비난, 외로움, 질병, 속상함 모두가 태산을 이루는데 끼어드는 재료들이다. 나만 당하는 고난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인생살이에 묻어오는 필수품들이다. 그 중 상당한 수의 고난은 천국의 상급으로 바꾸어질 품목들이다. 사도바울이 주를 위한 고난을 즐겨 받은 이유다.

섭섭함의 감정을 이제 그만 밀쳐내라. 불평전문직을 당장 사표 제출하라. 당신은 불만을 생산해 내는 권리가 없다. 허가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망으로 수북이 쌓은 제방도 과감하게 무너뜨려라. 자기 분노와 이별 연습을 하라. 긍정과 부정을 택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했다.(잠4:23)


“예수님! 감사합니다!” 소리 질러라. 혼절할 정도로 찬란한 천국 영화를 똑바로 보고, 영광의 주님께 기쁨을 연출하라. 어설픈 고집을 꺾어 부수고 설익은 지식을 뒤로 물린다면 주님은 나의 일생의 총수가 되어 주시고 하늘의 은사와 보화를 부어주실 것이다. “내 주님 영광의 옷 입고 문 열어 주실 때, 나 주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겠네!”(찬송가 87)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