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 마련해 주십시오

온 세계가 경제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가장 어려운지도 모른다. 취직자리 하나 마련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란다. 어려운 세태를 반영하여 새로운 신조어가 많이 나타났다. 청년실업자가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은 고용한파를 넘어 ‘고용빙하기’로 묘사하고 있다. 사회 진출을 앞둔 대학 졸업예정자들은 ‘실업예정자’나 ‘졸업백수’라 한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은 벌써 한참 지난 신조어가 되었고, 최근에는 20대에 스스로 퇴직을 택한 ‘이퇴백’이란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태백’이 안 되려고 불안한 마음에 무작정 취업을 했지만, 적성과 근무조건이 맞지 않아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년은 더 낮아졌다. 오륙도(50-60대에 회사 다니면 도둑), 사오정(45세 정년퇴직), 삼팔선(38세 회사퇴직)에서 급기야 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인 ‘삼초땡’이 유행이다.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남편들 때문에 부인이 겪는 스트레스인 ‘은퇴남편 증후군’도 생겼다.
어디 그뿐인가? 외국에서 박사, 석사학위를 받아 왔지만, 교수자리 하나 마련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이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려놓고 노점상이라도 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자리하나 찾기가 어렵다. 간신히 사람 하나 누울만한, 세칭 쪽방도 방값이 비싸 들어가지 못하고 노숙자가 길거리에 넘쳐난다. 사람 살면서 이런저런 자리하나 차지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취직자리, 좋은 혼처자리, 벼슬자리, 교수자리, 장사 잘 될 자리, 좋은 묘 자리, 집터 자리 무슨 자리든 서로가 좋은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심지어는 몇 시간 놀다 갈 유원지에서도 좋은 곳에 돗자리를 깔려고 난리들이다.
교회의 목회하는 일도 별반 다름없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목회자를 청빙하려고 광고를 냈더니 수 십 명이 몰려 경쟁이 만만치 않다고 하였다. 신학교 졸업생은 계속 쏟아져 목회자는 많이 배출되는데, 정작 목회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한 자리 차지하려는 싸움이 세상과 다를 것 없다. 총회장자리, 감독자리, 장로자리, 권사자리…. 무슨 은혜인지는 모르지만 은혜를 받으려고도 앞자리 다툼이다.
어려운 세태 속에서 이런 저런 자리 하나 차지하기가 어려운 세상사를 바라보면서 문득 천국의 한 자리 얻는 것은 어떠할까 생각해본다. 세상자리야 사는 동안에만 필요한 자리들이지만, 천국의 한 자리는 영원한 나의 자리가 아닌가? 세상에서는 좋은 자리하나 차지 못해도 천국에서는 자리 하나를 잡아야 할 터인데….
많은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 천국을 따 놓은 당상처럼, 맡아놓은 아파트 입주권처럼, 믿음이면 다 천국에 한자리 차지하고 들어갈 것처럼 철썩 같이 믿고 있는데 정말 그런가? 생각해보게 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천국에서 누가 더 높은가하는 제자들의 다툼을 보시면서,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의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데, 그런 의미는 아니리라.
어린아이의 특성이 무엇인가? 천진난만, 순결무구, 절대의지, 겸손 등이 어린아이의 특성들이 아닌가? 겨우 말을 시작한 어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대머리를 보고 턱을 짚으면서 ‘여기 있는 것 떼어다가 거기다 붙이라’고 했다는데,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가?
그러나 그것도 잠간, 조금만 크면 어느새 죄악성과 정욕이 찌든 인생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기 전에 젖먹이의 순진한 모습처럼, 하나님 안에서 영적 아이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겸손하다. 젖먹이가 교만한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래서 주님도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는 큰 자니라”(마18:4)고 말씀하셨다.
무익한 종처럼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주인의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주인의 먹고 마시는 동안 수종을 들고,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눅17:10)고 하면서 겸손하게 주인이 허락하면 자리 하나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주님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고 하셨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천국의 한 자리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인가? 성찬식을 하면 되는 것인가? 이는 상징적인 의미로 주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모습을 가지고 오셔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면서 당하신 고난의 삶을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고난과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하셨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인내의 모습을 보이시면서 수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셨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본받으면서 우리도 각자 몫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야 한다. 주님이 살을 찢으시고 보혈을 흘리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당하신 고난을 우리도 당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이 과정이 광야의 연단 과정이요, 자아가 깨어지는 과정이요, 그것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연단을 마친 성도는 주님의 살과 피를 전부 먹고 마셔 정결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국의 한 자리가 완전히 확보되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한자리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주님, 불쌍히 여겨 천국의 한 자리 마련해 주십시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