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 주치의로부터 머리속에 종양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뒤통수로부터 차가운 물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척이나 놀랐고 혼란스러웠다.  

여러 가지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 구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까 말까’  ‘얼마나 종양이 진전이 되었을까‘  ’얼마나 크게 퍼졌을까‘  ’결국 나도 죽게 되는가‘  ’아이들은......‘  마음이 착잡했다.  시간이 약간 흐른 후에, 마음을 조금씩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내니 안심하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울리면서 조용히 떠올랐다.  마음속의 혼란스러움을 밀어내고 평안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던 한 달전 일을 떠올렸다.  

        4월 초부터 왼쪽머리가 슬슬 아픈 기색을 띄었다.  약 7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이면 불쾌한 통증을 동반한 두통이 찾아오곤 했다.  보통 3-4일가량을 아프다가 사라지곤 하는 두통이었다.  

처음에는 사랑니가 곪았나 보다하고 생각해서 일 년 차이를 두고 사랑니 두개를 뽑았었다.  

3년째부터는 아마도 스트레스성 두통이려니 하고 지나갔다.  

왜냐면 몹시 바빴거나 무리를 하는 일이 있은 후에 꼭 그런 두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3일째 끙끙대고 앓다가 의사를 만나게 되면 사라지는 얄미운 두통이었다.  

그러기를 이제 7년째에 접어든 것이다.  

해를 거듭 할수록 통증의 강도가 세지고 아픈 기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두통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어느 날 오후에 남편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빽빽하게 꽂혀있는 틈 속에서 한 권의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제목이 가슴을 쳤다.  나는 그 즉시 ‘네,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이라면, 꼭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왜 그런 질문을 내게 주셨을까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왔고 이번에는 그 전에 경험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참기 힘든 통증이었다.  일주일을 꼬박 먹지도 못하고 직장에도 가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앓기 시작했다.  

젓가락과 같이 뾰족한 막대기로 꼭 쑤셔대는 통증이 왼쪽 머리로부터 귀로해서 이빨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4일이 지날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 때문에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두통약을 받아왔으나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  

급기야는 가까운 Stevenson 병원에 응급실로 찾아갔으나, 습관성 두통이라고 진단을 하고 별다른 처방 없이 돌려보냈다.  

약 일주일간의 통증이 사라질 무렵에 갑자기 목소리가 쉰 소리로 변하고 음식이 목으로 잘 넘어가질 않기 시작했다.  무엇을 먹든지 자꾸 사래가 들었다.  그리고 왼쪽 어깨도 힘이 약해져서 위쪽으로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에는 두통이 시작된 지 약 3주가 흐른 후에야 MRI를 찍어 보았던 것이다.  

        MRI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는 물음도 그렇고 그렇게 아파서 누워있었던 3주가량동안 왜 하나님은 내게 아무런 말씀도, 감동도 주지 않으시는 것일까.  왜 침묵하시는 것일까.  나는 내 머리가 아픈 사실 보다도 아무런 응답도 없으셨던 하나님의 의중이 더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에 나의 마음속으로 내가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았던 내 삶의 큰 부분들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포기하면서 기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고, 남편 되는 김성수목사와 심지어는 나의 아이들, 찬양이와 예진이에 대한 사랑까지도.......  

       금요일에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걱정스러운 하루를 넘기고는, 다음날에 나는 하나님 앞에 좌정하고 앉아서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섬겨온 지난 30년의 세월을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내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온 지난 세월을 기억해 주십시오.  비록 여러 가지 시험에도 넘어졌고, 하나님보시기에 부족했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던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나의 병을 치료해 주십시오.”  짧은 기도였지만 나의 마음에 크나큰 감동이 찾아왔다.  ‘지영아,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 ; 내가 반드시 함께하리라.’  마음에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것과 같은 감동이 찾아왔고, 그 즉시로 마음이 편안해 졌다.  앉아서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에 성경 말씀 중에 시편을 읽고 있었는데 시편 49편 15절과 16절 말씀이 가슴에 꽉 부딪쳐왔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은 자에게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찾으라. 내가 너를 건지겠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나는 그 즉시로 지난 14년 전쯤에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생각이 났다.  나의 인생의 여정에서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무슨 일이든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보여드릴 수 있기를 원했었다.  지금 나는 나의 서원을 주님께 드릴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합니다.&! nbsp;  뇌종양이 생긴 것도 감사합니다.  비로서 나 자신도 주님 앞에 진실 된 사랑의 고백임을 알 수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큰 기쁨과 평안이 물밀듯 내 영혼과 마음에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걱정이 사라져 버렸다.  죽음이라는 존재도 더 이상 나 자신을 두려움 속에 묶어 놓지 못했다.  

    시애틀 지구촌교회를 개척한 지도 이제 약 4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성수목사와 1994년에 만나서 결혼하고 동부지역인 버지니아에서부터 켄터키 루이빌로 옮겨가서 남침례회 신학교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한 후에 남편은 가족을 이끌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2001년도 8월달에 워싱턴주의 린우드라는 도시로 오게 되었다.  아는 사람 한명도 없는 낯 설은 도시에서 개척교인 2명과 함께 교회를 세운지 이제 4년째 접어들면서 교회사모의 뇌종양 진단은 여러모로 성도들에게도 큰 도전을 주는 것이었다.  모든 지구촌교우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중보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하면서 하나님께 치유와 회복의 기도를 ! 드렸다.  남편은 동부 김만풍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계신 모교회(Mother Church)인 워싱턴 지구촌교회의 중보기도팀과 한국 지구촌교회(이동원목사담임) 중보기도팀, 서북미 침례교회의 목사님들과 그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곳에 연락을 취해서 기도를 부탁드렸다.  한국에 계신 시집식구들과 미국에 사시는 친정식구들 모두가 마음을 합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의 수술을 담당하게 된  Dr. James Blue도 이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전문의였다.  다음 주 월요일에 Dr. Blue와 만남을 가지고 그 즉시로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7년 동안 자라온 종양이 골프공 사이즈 만하게 귀 뒤쪽으로 자라있었다.   종양이 중추신경과 너무나 근접해 있기 때문에 수술의 성공여부는 머릿속을 직접 보아야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며, 이미 목의 근육을 통과하는 신경의 상당 부분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말하는 기능과 음식을 삼키는 기능의 정상적인 회복이 가능할 것인지의 여부도 분명치가 않았다.  또한, 수술 후에는 위장으로 튜브를 연결해서 음식을 섭취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 ?Dr. Blue가 염려하는 것은 그것이 양성인지 악성종양인지의 사실이며 이것은 오로지 수술 후에 조직을 검사해야만 알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 후에 이틀 동안은 뇌졸증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수많은 수술들을 집도했었으나 그 결과는 언제나 가늠할 수 없는 일이라며 수술의 결정은 본인인 나에게 맡겼다.  나는 주저함 없이 결정했고, 그 당시에 마침 미국에 방문하고 계셨던 시어머님이 계셨기에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3주 후에 수술 날짜가 잡히고, 하루는 아이들을 불러서 종용했다.  항상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아야 할 것과 서로 힘이 들어도 사랑하고 도울 것을 부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8살 난 아들 찬양이와 5살인 딸 예진이를 앞에 두고 한없이 마음이 저려왔다.  “엄마는 머리가 아파서 수술을 할꺼야.  근데 어쩌면 좀 더 오래 걸릴 지도 몰라.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빠 말씀도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연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지만 무슨 느낌이 있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슬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 또한 아파왔다.  그리고 멀리 케냐에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친구 임은미 선교사의 기도가 생각이 났다.  항상 위험이 ! 도사리고 있는 선교지에서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고 가족을 뒤로하고 순종해야하는 삶이기에 그녀는 늘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 내 감정에 반창고를 붙여주십시오.  그래서 가족 때문에 주님의 사역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는 일들로 인해서 주님 앞에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고 준비되어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담대히 나올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제 그녀의 기도는 나의 기도가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인생을 드린다는 결심은 나의 형통과 시련을 더불어서 생명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잠언의 말씀 속에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한 것과 같이 내게 있어서 하나님은 나의 소망이었다.  내가 산다고 해도 또한 죽는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남편도 나와 같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계속 격려해 주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목회를 하셨던 아버님의 뒤를 이어서 사역자의 길로 접어 든 후에 맞은 시련이었으나, 성령님의 큰 위로와 도우심으로 잘 견뎌내고 있었다.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 새벽에 아이들을 뒤로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다행입니다.  이 아이들을 사람에게 의탁치 않고 하나님 손에 맡기게 된 것을 너무나 다행으로 여깁니다.  저는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 아이들의 장래를 주님 손에 부탁드립니다.’  

        오레곤에서 사는 언니와 함께 남편과 몇몇 교회가족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약 8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지낸 후에 일반병실로 옮겨왔다.  수술은 성공을 했다.  Dr. Blue가 찾아와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악성이 아니고 양성종양이라고.  그리고 수술 중에 직감적으로 위장에 튜브를 꽂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고 말해 주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나를 다시 살려서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신실하시고 좋으신 나의 하나님.......

    회복하는 기간에 성령님의 충만하신 도우심이 내가 머물렀던 병실로 찾아오셨다.  나는 따뜻한 성령님의 감싸 안으시는 손길 속에서 어머니의 품속에서 잠자는 아기보다 더 평안하게 쉴 수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의 보슬비가 누워있던 나의 영혼위에 흠뻑 적시면서 내려오는 것을 경험했다.  나를 위해서 금식기도하면서 도우셨던 친정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많은 집사님들과 친구들.  지구촌교회의 김유영전도사님과 사랑하는 교우들.     내가 알지 못하지만 나의 소식을 듣고 기도해 주셨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같이 받으시고 응답해 주신 것이다.  

     이제 수술 후 일 년이 지나고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는 중에, 다시금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음식을 삼키는 일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  수술 전과 같지는 않지만, 일상의 생활이며 그 외에 하고자하는 일들을 잘 해내고 있는 지금에도, 내가 어려울 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은 내 영혼을 감싸고 계신다.  나를 좀 더 높은 바위로 옮기셔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이 땅을 다스리시는지를 보게 하시고,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는 하나님.  내가 결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주님께서 나를 사망의 두려움에서 건져주신 것이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오는 날, 나는 이런 표현을 남편에게 했었다.  보이는 것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지만,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변했다고.  내가 주님을 바라보는 심령이 변했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고,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짧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하고 또한 중요하지 않은지 알고 결단하는 것도 변한 것 같다.  이제 내 나이 마흔 살이 막 지났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 40살의 시작을 거창하게 열어 주셨다.  앞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나의 날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몰라도, 하루하루를 주님과 함께 사랑의 왈츠를 추는 기분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3년 전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지었던 시가 생각이 난다.



주님과 왈츠를

세상이 열리고

소음이 시작되면

나는 주님과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나는 나의님의 가슴에

내 님은 내 안으로 들어와 우리는 하나가 된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돌기 시작한다.

내 님의 숨결이 닿는 곳에 생명이 소생하고

주님은 눈물과 탄식을 절망에서 끌어 올린다.




내 님의 말소리에

눈물이 보석이 되어 옷깃을 만지며 떨어진다.

탄식이 사랑의 열창이 되고

어느덧 나는 내 님과 같이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주님이 나를 만지실 때

나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감출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이

팽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저려서 저려져서

가슴이 저미도록 기쁨이 절여져서

온몸은 하나가 되어

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신음으로 뱉어낸다.




내 가슴보다 더 커져버린 승리의 탄성은

나의 미소로, 말소리로, 손짓으로,

발짓이 되어 호흡같이 빠져 버린다.




예수님을 아는 기쁨이 이렇게 큰 것을.




세상이 고통 속에 가슴을 쓸어내릴 때

나는 주님과 함께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