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밑거름 역할


신령한 밑거름 역할을 하는 진정한 이 시대의 리더자

지금 한국은 ‘박연차 게이트’가 일파만파 되어 노 전대통령에게 실망을 넘어 절망적인 분위기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친인척 비리에 연루되어 퇴임 후 곤욕을 치루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리더십을 찾는다.

구태의연한 리더십
지난 3월 21일 워싱턴포스트 주말매거진 ‘레퍼이드’는 ‘세계 최악의 10대 독재자’를 선장했다. 고문 등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며 경제를 망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1위, 마르푸르 대학살을 주도한 다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2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독하게 이기적이며 폭력적이다. 사랑과 절제나 경건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일국의 대표자들이면서도 자국민의 평안과 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의 부귀영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서울에서 경찰관들이 시위대 20여명에게 뭇매를 맞는 일이 터졌다. 경찰이 시위대에 폭행당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시위대만 그런가. 취객에게 거친 욕설을 듣는 지구대 야간 근무자, 10대 폭주족의 놀림감으로 전락한 교통경찰도 낯설지 않다. 이런 상황을 놓고 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라 한다.
조선시대 포졸은 의적들의 놀림감이었고 일제 강점기 순사들은 앞잡이에 불과했다. 두들겨 맞는 포졸과 순사이야기는 속 시원한 영웅담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불의 부패한 공권력은 저항의 대상이었다.
도심 게릴라 수십 명이 경찰관 한 명을 둘러싸고 뭇매를 때리는데 누구도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우리 머릿속에 경찰은 늘 맞을 짓을 한다는 생각이 깊게 박혀있는 탓이다. 권위를 확립한다고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없는데 무슨 소용일까.

대안은 없는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최초로 한인 미셀 리(39.여)가 교육감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코넬대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과정까지 마친 그녀가 고액연봉이 보장된 직장을 포기하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볼티모어 빈민지역이었다. 미셀 리는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로 3년 동안 가난한 주민들을 섬겼다.
2009년 3월 초 김용(49) 박사가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유명한 봉사 왕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빈민국의 질병 퇴치를 위해 앞장서왔던 경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는 법대 졸업 후 충분히 선택 가능한 탄탄대로를 거부했다. 대신 범죄율과 실업률이 높았던 시카고 빈민가를 찾아 수년 동안 인권운동가로 맹활약했다. 이런 실제적인 헌신과 희생이 그가 정치가로 활동하는데 큰 디딤돌이 되어,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보수를 보장해주는 자리를 마다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헌신과 섬김의 스토리가 결국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들의 리더십을 신뢰하여 교육감, 총장, 나아가 대통령도 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요즘 사회적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이제는 최고나 성공의 자격조건인 학벌, 재산, 재능, 외모만으로 채워진 리더십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는다. 사회를 위해 얼마나 섬겼는지, 타인을 위해 헌신한 경력이 있는 지가 더 중요한 요건이 되고 있다. 즉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신령한 밑거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좋게 하는 신령한 밑거름 말이다.
대부분 주목받을 수 있고 출세가 보장되고 연봉도 굉장한 그런 자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쉽고 편한 길을 마다하고, 뻔히 손해가 예상되고 고생길이 훤한 그 길을 갔다. 실력이 없거나 경쟁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좁고 협착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성경적 리더십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사람들이 알리라”고 하셨다. 자신을 다 태우고 희생하는 모습에서 감동이 일어나며, 여기서 권위와 리더십이 나오는 게 아닌가.
슈바이처는 바하 음악의 대가, 유럽 최고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철학과 신학 교수라는 명예와 보수, 직분을 버리고 대학교수의 기득권을 버리고 의과대 신입생이 되었다. 6년간의 의학공부, 2년간의 인턴과정을 거처 의사자격증을 따고, 간호사가 된 부인 헬렌과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아프리카 가봉의 람바레네로 갔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방종하지 않고 가봉에 가서 사랑으로 종노릇했다. 나중에 유럽은 세계 2차 대전을 치룬 뒤에야 슈바이처의 리더십을 인정했다. 그의 생명존중과 사랑에 경의를 표하고 노벨평화상을 주었다.
존 번연은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유일하게 자유로운 존재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유는 오직 선한 일만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육신의 소욕을 탐닉할 자유는 가지지 않는다.
미셀 리, 김용, 버락 오바마, 슈바이처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가지고 방종하지 않았다. 자기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데 몰두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갈 수 있었으나, 오히려 절제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남을 위해 사랑을 실천했다.
하나같이 절제와 사랑으로 종노릇하여 자신의 리더십을 인정받았던 사람들이다. 리더십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예수님을 본받아 절제와 경건생활을 철저히 하고, 사랑으로 종노릇할 때 자연히 따른다.
좋은 것 다 누리고 즐기면서 사람들이 따를만한 리더십을 바라지 말라. 리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록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있다 할지라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진 직분과 명예와 재산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월한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성경적인 리더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는데서 비롯된다. 그래야만 모두를 좋게 하는 신령한 밑거름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