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絶望)


절망(絶望)은 희망이 끊어져 체념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존 철학에서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자신의 무능과 그에 따른 허무를 깨달은 정신 상태라고도 한다.

램비(Lambie) 박사가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그가 강을 건너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 강은 얕은 강이었지만 물살이 워낙 세서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 부딪쳐 크게 부상을 당하거나 죽기도 했던 그러한 강이었다. 그는 강을 건너려고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서질 않자 원주민에게 돌아가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 돌을 등에 지고 건너가라는 것이었다.
램비 박사는 그렇게 해서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한 가지 진리를 깨닫고 증거를 하게 되었다. 즉 인생이란 물상이 센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면에서 마귀들이 어떻게든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공격을 하지만 무거운 돌을 메고 가면 끄떡없다는 것이다. 그 돌이 비록 무겁고 짊어지기 싫은 짐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짐이듯이 십자가의 길도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절망이란 사실상 견디기 힘든 것들 중에 하나다. 그러나 이 절망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허락 하에 주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성도라면 언젠가는 딛고 일어서야 할 필연적인 성장의 코드라는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할 때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개구리 가족이 나들이를 나왔다. 그런데 길을 건너다가 어린 개구리 한 마리가 트럭의 바퀴 자국이 남긴 물웅덩이에 빠져 나오질 못했다. 엄마 개구리와 아빠 개구리는 아기 개구리의 이름을 안타깝게 부르며 뒷다리에 힘을 주고 힘껏 뛰어보라고 말했다. 아기 개구리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나올 수가 없었다. 엄마 개구리와 아빠 개구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저쪽에서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 아빠 개구리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눈물을 머금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길가 풀숲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트럭이 지나가자 그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뒤돌아보았을 때 어린 개구리는 더 멀리 도망가 있었다.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자에겐 그것이 죽음일 수 있지만 절망을 이기고자 하는 자에겐 도약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결코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방관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인 조지프 케네디는 25세에 은행장이 되고, 30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영국 대사가 되기도 했다. 그는 로즈 케네디와 결혼을 해서 4남 5녀를 두었다. 그런데 장녀 로즈메리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지체아로 출생했으며(1919), 큰아들 조지프 주니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1944년에 전사했다. 같은 해에 딸 캐더린의 남편이 죽었고, 4년 후에 캐더린도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다행히 차남인 존 F 케네디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이 되었으나 1963년에 암살되었고, 장차 대통령 감으로 물망에 올랐던 3남 로버트도 1968년에 역시 암살되고 말았다.
여기에다 막내아들 에드워드가 체퍼퀴딕 사건으로 연루되어 정치적 생명을 잃고 1969년에 조지프 케네디 자신도 죽고 말았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부인인 로즈 케네디는 굴하지 않고 장애인 복지 센터를 설립하여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공헌을 남겼는데 그녀는 정말 절망에 굴하지 않는 굳센 아내이며, 굳센 어머니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자신이 해결하려고 할 때 좌절이 있고 절망이 있는 것이다. 청지기의 삶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절망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려는 교만에서 절망은 오는 것이다. 따라서 절망은 믿음이 없는 자의 전유물일 뿐이다.
송흥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