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뜨거운 태양 아래 물을 길으러 나온 한 여인이 있다. 그 우물 곁에 기다렸다는 듯, 물 한 모금을 청하는 남자 한 명이 나타난다. 낯선 남자의 관심이 귀찮았는지, 알 수 없는 상처 때문인지 여인은 고슴도치처럼 경계의 눈빛을 쏘아댄다. “왜 내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그때 모든 벽을 무너뜨리는 한 마디가 들린다. “지금 당신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당신은 나에게 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물을 달라 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과의 대화에 여인은 결국, 물동이를 던지며 기뻐하고 환호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수 없이 들었던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다. 과거에는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고 전도자가 된 여인은 세상 것으로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며 방황하는 불신자들에게 전도용으로 많이 전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 속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너는 나를 그렇게 섬기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를 헌신의 대상으로 생각하느냐? 너는 왜 나를 예배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느냐? 나는 너의 목마름을 채우는 생수의 근원이다. 너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한다고 하지만 왜 내게로 와서 생수를 마시지 않느냐?” 뜻밖의 음성에 머리가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씀의 빛 앞에 섰다. 주님께 드린 것도 많고 앞으로 드릴 것도 많다면서 헌신을 약속했지만 채움 받은 흔적은 없어 공허한 내면이 비쳐졌다. 아버지 집에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음에도 누리지 못해 곤고해 하며, 돌아온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질투하는 누가복음 19장의 큰 아들과 같은 병에 빠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어떤 목사님의 고백이 생각난다. “매일 말씀을 전합니다. 성도들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전했다는 인사를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정작 강대상에서 내려온 후, 제 마음은 곤고할 때가 많습니다.”

헌신된 삶을 살지만,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하지만, 정작 주님이 우리에게 생수를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잊어버리고 산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만족은 다른 곳에서 찾는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던져진 칭찬과 인정을 방으로 가져와 곱씹으며 그 속에서 나오는 단물로 영혼의 양분을 삼으려 한다. 혼과 성의를 다해 하나님의 일을 섬기고 난 후, 재밌는 책과 영상을 찾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며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 어떻게든지 생수를 얻어 보려 애쓰지만 목마름은 깊어져 갈 뿐이다. 육적인 즐거움이 쌓이면 헌신하는 삶은 점점 기쁨이 없어지고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제 영혼은, 신령과 진정이 빠진 껍데기만 남게 된다.

주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무지 속에 문제가 있다. 내가 현재 아는 예수님에서 머물러도 괜찮다면 왜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고 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알기 위해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3:8). 그 모든 것에는 내가 지금 놓지 못하고 있는, ‘예수님, 이것만큼은 안돼요.’ 하며 꼭 쥐고 있는 그것을 포함한다.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한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께서 지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제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말씀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여러분의 사랑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실 뿐 아니라 여러분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다가가지 않으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그리워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목마름을 느끼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여러분들이 그럴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에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왜 목마르다.’고 말씀하실까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말로 설명하기는 너무나 힘듭니다. ‘목마르다.’는 말씀은 단순히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보다 훨씬 심오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목말라 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 원하시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00년 전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신 예수님은 여전히 목이 마르시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에서 흙탕물을 마시며 병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타는 듯한 갈증을 호소하신다. ‘너희가 나를 안다면, 참으로 내가 누구인줄 안다면.’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그 목마름을 오늘도 견디시는 예수님. 그 샘으로 나아가 한 방울의 생수로 설 자 누구일까.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