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밖으로


주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 성찰 없이 달리기만 하면, 어느 순간 속에서부터 텅 빈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진 직분과 자리 때문에 그 자체가 체면이 되어 일 할 때도 있었고, 본연의 자기다움을 잃고 자리만 채우는 역할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칫 허례와 위선의 일꾼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이 생명을 낳는 기적을 날마다 창조해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엔 죄성과 정욕의 누더기를 입고 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고집스런 일꾼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새로워져야겠다는 영혼의 나지막한 음성을 듣습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힘차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주의 일이 어느덧 나의 일이 되어 내 뜻과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분을 내고 불편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럴 땐 내 자신을 거울로 비추어 보듯이 뻬?앞에서 나의 영혼을 점검해야 합니다. 주의 일은 명민함으로 민첩하게 일처리를 말끔하게 처리하는 수완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의 영혼은 기갈 되어 있는데도 가르쳐야 하고 일해야 하는 반복과정 가운데 기쁨을 잃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뽀얀 먼지가 앉은 내 마음의 벽장 속에 콕콕 가두어 두었던 자신감, 사랑, 열정을 끄집어 올릴 때가 되었나 봅니다. 거짓과 가식의 겉옷을 북북 찢어 버리고, 다시금 새롭게 본연의 나를 살피며 영성의 불을 지펴야 하겠지요. 내 영혼이 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살릴 수 없습니다. 이름만 사명자가 아닌 그 안에 생명의 자유함이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충직스런 주의 사람이길 원합니다. 가지만 무성하여 열매 없는 나무가 되기보다는 하늘을 향해 우뚝 선 열매도 많고 잎도 무성한 큰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내면을 성찰하기에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영성일지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성일지(Spiritual Journal)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들을 기록해 나가는 일기(Diary)와는 달리 자신의 삶의 내적 변화를 글로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앤 브로일즈는 영성일지를 기록하는 요령 6가지를 소개합니다.
일상에서 나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기록하기, 성경을 독서한 후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을 기록하기, 특별히 훈련된 묵상을 통한 영적 상상을 기록하기, 꿈이라는 무의식을 통해 발견된 의미를 기록하기, 책이나 신문을 읽은 후 하나님과의 대화를 기록하기,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기록하기 등입니다. 존 웨슬리가 영성인의 대가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일지 때문입니다. 유명한 올더스케잇 거리의 회심은 이런 영적 성찰의 결과였습니다.
자기 성찰에서 비롯한 나다움의 바탕에 영성의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내가 아닌 거짓과 가식의 자아 위에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려도 언젠가는 그 기틀이 튼튼치 못하여서 곧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떠가는 구름 같은 영혼의 복잡스런 잡음들을 잠재우기 위해 영성의 뼈대를 말씀으로 든든히 세웁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할 때도 내가 만족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달든 쓰든, 손해가 되어도 순종해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우쭐대고 자만하지 않고 늘 숙연하고 겸허한 자세로 일해야 영성의 터를 굳게 합니다. 잘 가르치고 일을 잘 한다 해도 내실 있는 영성의 기틀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주의 일 하고도 스스로 자만에 빠져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일을 할 때도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고, 너무나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일은 조건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자신의 영혼을 생각하여 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가을의 길목에서 하나님과 독대를 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거창함이 아닌 가장 단순하고 가장 낮은 모습의 본연의 나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예로부터 영성가들은 성도들의 영성적 실존을 위해 ‘독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독거를 배우기까지 우리는 진정 풍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홀로 있음(alone with God) 또 나와의 홀로 있음을 위해 조용한 새벽시간에 또 모두 잠든 늦은 밤에 영성일지를 쓰면서 나를 발견하며 나의 삶을 분요케 하고 극성떨며 소요케 하는 모든 소란으로부터 한적함을 누립니다. 그 안에 작고 고요한 평안이 밀려옵니다. 삶을 그리 분잡하게 이끌어 갈 필요 없는 단아함을 얻게 됩니다.
또 내 속에 던져놓은 오래된 영혼의 때와 더러움들을 다 끄집어내어 말끔히 닦아냅니다. 타는 듯 한 인생의 욕망과 허무함을 주님이 주시는 평온함과 이해와 감사로 가득가득 채웁니다. 달리기에 고단했던 나의 영혼과 마음이 어느새 신기하리만큼 가뿐해져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을 주목하지 못해 조잡해지고 누추했던 마음들을 정돈시켜 주십니다.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껍데기 속에서 웅크리고 잠자고 있던 내 영혼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교회생활용 내지는 신앙생활을 위한 모습이 아닌 자주 싫증내고 고단해 하는 여리고 여린 작은 나를 보게 됩니다. 껍데기를 벗어 던진 비워진 나의 영혼에 높고 맑은 하늘만큼이나 청명하고 청정한 거룩한 나라를 그려봅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그 나라를 또렷이 맑은 맘으로 바라봅니다. 평탄한 길보다는 가시밭 길 선택하며 나의 밑그림이 지워지지 않도록 내 속을 자꾸만 들여다보며 분주함 없이 그 분을 따르려 합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