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과 날숨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감람산에 올라 기도하신 것은 영적인 호흡을 이어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육체의 호흡이 끊어지면 육적인 생명이 끊어지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호흡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영적인 호흡인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육체적 호흡은, 숨을 쉬는 것인데, 들이쉬는 들숨과 내보내는 날숨이 있습니다. 이 들숨과 날숨의 작업을 허파가 하고 있습니다. 허파는 숨을 쉬는 중요한 장기이지만,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는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답니다.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 들어 있을 때에는 아기 스스로가 숨을 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허파의 역할을 엄마의 태반이 대신 해준답니다. 그러나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울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순간, 허파도 동시에 펴지면서 생명유지를 위한 들숨 날숨의 작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신생아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영적인 호흡인 기도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신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기도의 대상으로 하나님에게 나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속 영적인 호흡인 기도를 통해 영적인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숨 쉬는 것이 들숨과 날숨의 단순한 반복 작업 같지만, 사실은 인간의 여러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상태로 변하면서 상황에 맞게 대처를 하는 것입니다. 큰 걱정이나 근심이 있을 때에는, 긴 한숨을 땅이 꺼지듯이 쉬지 않습니까? 이것은 긴 들숨과 날숨이 몸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작업인 것입니다.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거나, 악몽을 꾸면 짧고 빠른 들숨과 날숨을 쉬지요. 그것은 이러한 상황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작업이지요. 화장실에 가면 긴 들숨을 하고 참아야 밀어내기(?)가 되어 집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콩닥거리며 숨이 가빠집니다. 그것처럼 영적인 호흡인 기도로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기도의 형태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부르짖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조용히 기도하고, 어떤 때는 화살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의 기도의 형태를 따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가지 형태로 기도한다해도, 결국은 호흡하려면 호흡의 기본인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것처럼, 기도의 요소에서 두 가지를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날숨으로 끝날 때가 너무도 많은 것을 봅니다. 내안에 있는 것들만 다 쏟아내고 끝내 버리는 것입니다. 내안에 있는 슬픔, 괴로움, 죄의 고민, 여러 가지 필요한 것 등을 날숨 쉬듯 다 올려 보내고 들숨을 쉬지 않습니다.

들숨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들입니다. 물론 기도의 응답들도 하나님께로 내려오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력과 비젼과 꿈들입니다. 그것을 받아야 온전히 호흡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부족합니다. 너무나 일방적인 기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가 필요한 것만 다 올려드리고 도무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은 받으려 생각하지 않습니다. 숨을 쉴 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야 하는데, 내뱉는 날숨은 쉬지만 들숨은 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을 먹고 마시며 누리고 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그 영원한 천국의 생명력을 하나님께 받아 누리며 살아가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것도, 세상의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하늘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작업이었던 셈이지요.
기도의 날숨을 통해 내안에 배설물을 다 내보내듯이, 내안에 있는 슬픔과 걱정과 고민꺼리들을 쏟아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와 생명을, 들숨을 쉬듯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오염되어 좋은 공기도 호흡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깊은 산골이나, 바닷가로 나가야 비로소 맑은 공기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얼마나 마음이 시원하고 상쾌합니까? 세상이 오염되어 맑은 공기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기도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온갖 정욕으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불신과, 혼미한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염된 것은 세상만이 아닙니다. 교회도 오염이 되었습니다. 어디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호흡하듯, 시원하게 기도의 호흡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단 오 분도 살수가 없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곧 죽고 맙니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