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축복은 덤으로: 기복주의와 기복신앙에 관하여


기복신앙이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무조건 나쁘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J목사님은 라디오 방송에서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이 자신한테 기복신앙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기복신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부인해야 한다.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좁은 길을 가야 한다. 자아가 깨져야 한다. 심은 대로 거둔다”라고 말씀은 증거 하십니다. 그런데 설교하시면서 이 땅의 축복을 예로 많이 들지만 천국에 들어가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과 행복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애매하게 옥살이 하며 큰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더니 총리가 되었습니다. 욥도 어려운 환난을 겪은 후 두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복신앙입니다. 여기까지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큰 성공을 했고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 이런 것만을 설명하면서 장차 올 영광과 비교를 해주지 않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이 땅의 축복은 덤으로 받는 것으로 증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큰 능력을 받고, 총리가 되고, 두 배의 축복을 받는 것, 또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나와 제일의 총리대신이 된 것을 강조합니다. 결국은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은 것이 초점입니다. 성령 충만을 강조하면서 뜨겁게 하지만 정욕을 충만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잘 내면 고생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백만 원 하면 하나님께서 천만 원으로 갚아주십니다. 창고에 가득 채워 주십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기복주의입니다.
거짓말 한 번 하면 수천만 원이 생기는 기회가 있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큰일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 한 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남에게 큰 피해도 주지 않는 거짓말이에요. 그런 경우 넘어지기 쉽지요. 그러나 수천만 원을 포기하고 정직을 행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의식주는 덤으로 주시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가난해도 자족하며 사는 것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물질을 손해 보지 않고, 체면이나 위신이 깎이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피해가고, 좁은 길 선택하지 않는 것이 기복주의입니다. 순간순간 강도를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손해 보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모른 척하고 떠나는 것은 기복주의입니다. 영혼이 먼저 잘되는 것에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범사에 잘되는 것은 덤으로 받는 축복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기독교가 마치 세상적인 복을 받게 하는 종교인 것처럼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잘해서 총리가 되지 않았느냐? 여러분도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총리가 된다. 그러니 여러분도 꿈을 가져라” “다윗도 목동이었는데 왕이 되지 않았느냐?”라고 가르쳐요.
이렇게 기복주의 말씀을 전하는 분들도 고난이나 연단에 대해서 말씀하세요. 그러나 목표는 세상 복이에요. 목적의식을 잘못 심어주는 것입니다. 기복주의의 결론은 세상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 권세 등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강조하게 되면 기복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천사의 도움도 이것을 위해서 있다고 합니다. 마치 세상적인 축복이나 영달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인 것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복주의를 물리치면서 순수하게 천국복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생활 가운데서 성령의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데 초점을 두도록 해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 빛의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 가정생활에서 빛의 열매를 맺도록 강조해야 합니다.
성경을 예로 들면서 세상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을 하나님은 매우 싫어하십니다. 물론 성경이 이렇게 보면 이런 것 같고, 저렇게 보면 저런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적인 소망, 세상적인 복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학교 교육 역시 세상적인 축복과 성공이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빛의 열매를 맺고, 천국에 상을 쌓고, 영생을 위해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진리입니다. 리드비나 성녀는 38년 동안 병상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많이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고쳐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런 삶이 모순 같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통해 천국에서 받을 엄청난 상급을 예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박대를 받고 고통을 많이 받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내와 사랑을 실천하며 빛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고쳐달라고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안 고쳐 주셨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은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원수가 없으면 어떻게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놀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빛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축복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기복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큰 복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늘 불안한 것입니다. 하루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는 신앙이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승리하는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