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선교보고 (2)

Ni wewe tu bwana Ni wewe tu
Ni wewe tu bwana Ni wewe tu
Hakuna mwingine
주님 만이 나의 구세주 입니다.
주님 만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성찬예식을 하면서 함께 은은히, 아름답게 부르는 찬송이 내 가슴에 촉촉히 내려 앉았다. 악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연습도 없이 남녀노소가 함께 부르는 찬송이 잘 조화되어 마치 10부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 같이 내 귀에 들려졌다.  천사들도 아닌데 어찌 저렇게 아름답게 부를 수 있을까?  마하라 잭슨의 혼을 흔드는 찬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난 단상 옆 구석진 자리에서 나에게도 찾아 오신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의 사랑과 평화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만약 나도 찬송을 알았다면 힘있게 내 안팎에 계신 예수님께 “주님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며 함께 힘껏 불렀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들의 예배를 보면 은혜스럽다. 찬양을 할 때 가만히 앉아서 찬양을 드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함께 기뻐 뛰면 춤추며 찬양하며 예배를 드린다. 오리 같은 엉덩이를 흔들흔들 흔들면서 추는 춤은 판에 박은 하와이의 훌라 춤이다. 혹시 훌라 춤의 원조가 아프리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흔들림은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쏟아 내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는 예배의 일부분이다. 이 모습들은 우리가 통상 드리는 예배와 다르다.

기도회를 인도할 기회가 있어 함께 기도를 드렸다.  일어서서 손을 높이 들고 진심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저렇게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하나님께서 어찌 저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겠나 하는 확신이 왔다.  저 영험 있는 기도를 보고 냉큼 친숙해진 목사님에게 체면을 무릅쓰고 나의 급한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목사님의 설교도 은혜스웠다. 비록 초등, 중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이지만, 특별히 문자를 쓰시지 않지만, 많은 것을 인용하지 않고 간단하게 열정을 다해 전하는 말씀에 생명력이 있었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비록 이들이 우리보다 문화 수준은 낮지만 신앙수준은 그렇지 않구나 함을 느꼈다.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이 반비례 한다”는 버트란트 레셀의 말이 새삼스러웠다.

옛날에 인류학 과목을 공부할 때 아프리카의 한 부락의 3대에 걸친 찍은 귀한 기록영화를 본적이 있다. 처음 그들은 아홉 가족이 한 집단을 이루면서 살아 갔다. 남정내들은 함께 어울려 사냥하려 가면 아낙내들도 나무뿌리를 깨면서 함께 먹거리를 준비 하면서 오순도순 지낸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함께 굶으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면 산다. 가진 것이 없는 원시적인 삶이지만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고,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마을이 커지고, 문화가 들어 옴에 따라 이기심이 더 크져서범죄와 서로간의 싸움이 잦아지고, 마을의 평화는 점점 깨어진다. 나중에는 이념이 들어 오면서 마을은 살벌한 전쟁터가 되고 만다.

창조 이후에 인류가 이루어 놓은 것 중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뭐니 뭐니 하여도 문화이다. 그러나 그 문화가 우리게 편리를 주었지만 만족은 주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인간성,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 비단 아프리카뿐 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의 현장에서 생생히 보고 있다. 문화가 우리 사회에 들어 올수록 급속히 비신앙적이고, 더 나아가 반신앙적인 인본주의가 되어 버렸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담 인간 문화 속에서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개인 신앙을 급속히 떨어지고 교회는 세속화되어 왔다. 신앙적인 표현을 빌자면 인간 중심인 문화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더 타락해 나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히 바벨성과 탑의 사건과 느부갓네살의 신상을 통해 (1:1-9,단2:31-43) 이 사실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있다.

어느새 우리와 절친하게 되어 버린 문화, 없어서는 안 되는 문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
준 이 위대한 문화, 이 문화 아래서 우리는 신앙에 대해 많이 배우고, 기독교의 전통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해서 믿음의 앞선 자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실제 이번 여행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예배뿐만 아니라 그들의 착함과 순순함을 볼 때 그들에게 선생되어 말씀을 가르쳤던 내 자신을 보면서 그 앞에 영적 교만을 가지고 건방을 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라는 말씀같이 세상의 물질문화로 부유하지 않고, 이에 때묻지 않은 이런 순수한 자들의 손을 들어 주시고, 가까이 다가 와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가난하고 문화의 혜택을 못 받은 그들보다 주님 앞에 더 가까이 와 있는지를……
주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