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선교 보고(1)

올해는 3 주간에 걸쳐 중동 아프리카 적도 주위에 자리 잡고 있는 르완다, 우간다와 콩고에 선교여행을 다녀 왔다. 여기, 여행 중 느낀 몇몇 소감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긴 여행, 비행기로 차로 그리고 배로 거의 이틀 걸려서 사역지에 도착했다. 르완다 공항을 벗어 나면서 이전 나의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감이 무너진다. 장글 혹은 사막을 연상했던 땅들이 온통 붉은 황토로 덮인 강산을 보니 붉은 대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또 날씨이다. 무척 더울 것을 염려하고 갔다. 그러나 이 염려가 무색해 졌다. 실상은 그곳 적도의 온도는 이 곳 센프란시코 날씨와 비슷하며, 그곳의 온도는 섭씨 19도에서 30도 한다. 때로는 좋은 날씨로 피서를 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검은 피부색은 뜨거운 날씨 때문에 유전 염색소가 변하여서 그렇게 된 것으로 알았다만 그것은 잘못된 상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었던 한가지, 가난한 대륙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사역 중에 별도로 시간을 마련해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슬리퍼를 사서 차에 싣고 산간 지역에 들어 갔다. 작년에 갔을 때 어린아이들이 신발이 없이 다녀 발에 상처들이 나 있는 것을 보니 마음에 안스러워서 선물로 준비했었다. 또 이 기회를 통용해서 노방 전도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산골을 지나 다니면서 느낀 것은 21세기를 살면서 어떻게 문화의 혜택을 저렇게 받지 못했나 하는 것이다. 문명을 말하는 ‘전’ 자 (전기, 전자 등)가 들어간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볼 수 있는 것은 나무들과 초라하게 지은 붉은 흙벽돌 집들이다. 좁은 단칸 집, 단칸 방에 한 가족 팔 구명이 빽빽이 붙어 산다. 아직 원시적인 때를 벗지 못하고 살고 있는 저들을 볼 때 아직 주님이 오실 때가 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신발을 나누어 주니 온 동네가 떠들석 했다. “무중구, 무중구” 하고 아이들이 겁도 없이 몰려든다. “무중구” 백인 이라는 말이다. 날 보고 백인이라고 하니 이곳에서 ‘Chinese’, ‘Ching’이라고 듣던 내가 갑자기 부르조아가 된 기분이라 어색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시였고 오히려 그들을 볼 때 서글픔에 눈시울이 적시어 진다. 옷 꼴은 다 떨어진 넝마주이 옷이다. (벗으면 남자, 여자의 구별을 못하기에 옷 맵시를 보고 구별한다.)  벗은 아이들이 많지만 그래도 모양새를 갖춘다고 윗도리는 입고 있다. 우연히 눈길이 다섯 살 정도되는 아이의 아랫도리를 보게 되었는데 아이구, 여아였다. 아이들의 머리는 기계충 피부병이며, 눈은 안질에 걸려서 고름이 흐른다. 마이신 한 알이면 간단히 나을 수 있는데…. 식사는 하루에 변변찮은 한끼를, 생활이 괜찮은 사람은 두 끼를 먹는다. 여기선 다이트 한다고 굶지만 그들은 없어서 굶고 있다. 그 곳의 30%가 HIV 환자이다. 전쟁 통에 떠돌아 다니다 돌아온 남편이 부인에게 옮겨 준 것이다. 고아의 25%가 aids 환자들의 희생물이다. 한 여인이 내게 하소연 한다. “남편이 자기 병을 심어주고는 병이 걸리니 도망쳐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보균자이며, 그 영향으로 두 발이 없는 기형아로 태어났다.” 는 것이다. 아이의 팔을 보니 마치 뱀가죽 같이 거칠어서 “왜 저렇게 되었느냐” 물어 보니 영양실조라고 한다. 같이 간 어린 여학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비상금 $ 100을 건네 주었다. 병원을 방문하여 보았더니 아무런 약도 없다. 임상실에는 고작 현미경 한 대뿐이다. 의사도 없다. 모두 나은 생활과 HIV에 감염될까 봐 도망 쳐 버린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열 번인 100년 동안을 백인들이 식민지로 다스렸는데 그들이 그 동안 뭘 했나? 백인 들이 이곳에 와서 열심히 기독교를 심어서 신자의 수가 40-50%를 상회한다. 그런데 ‘사랑의 실천’을 내세우는 그들이 뭘 했는가?  십자가를 앞세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탄압하고 착취만 하였는가? 하고 묻고 싶다. “천국은 미국보다 더 좋은 곳이다. 천국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 때 함께 기쁘게 잘 살자.” 라고 위로를 하고 왔다만 그것으로 나의 할 의무를 다한 것인가 하고 지금 스스로 질문해 보고 있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라고 하는 옛 말을 우리는 잘 안다. 구제는 참으로 힘든고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식민지 근성이 붙어서 인지 “다오, 다오”만 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좀 깨어서 열심히 노력하여 독립해 보아라” 하고 충고만 하고 말 것인가? 고작 20불이면 5명의 가족이 한 달을, 하루에 한 가족이 1불 미만이면 살 수 있는데…. 지금, 지구의 한 구석에서 뜨거운 모랫바닥 위에 힘없이 빈 배를 움켜 쥐고 앉아서 힘없는 눈을 멀건이 뜨고, 무엇 먹을 것이 있나 하고, 누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는 않나 하고 두리번 거리는 이들에게 그저 위로 하고 충고함으로 임무를 다 했다 하고 방관만 한다면 되겠는가? 지금 내 양심이 울린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셨던 질문이 있다. “가인아, 가인아 네 형제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의 피의 호소가 들려 왔다.”  이 질문은 우리와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신다. “지금 지구 위에 굶주려 죽어 가는 네 형제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굶주림으로 호소하고 있다.” 우리 냉랭한 마음을 가진 ‘가진 자들’이 지금 가인과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지 않는가?
가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재난이라고 말하지 말자. 조그만 사랑의 손길이면 된다. 그들은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가난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자! 벌리는 손길에 섭섭하게 공수로 돌려 보내지 말자! 우리는 성경에 남을 도와준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주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