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의 여행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까 하는 기대가 있는 까닭입니다. 하나님 뜻에 잘 순종하여 살지도 못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뢰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자전거 여행은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며, 도보 여행은 어떤 길도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선교 여행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선함이 있으며, 성지순례 여행은 선진들의 거룩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은혜가 있어 좋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가야만 하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여행도 있습니다. 존 변연의 천로역정처럼 천국 행로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이는 영혼 속 내면의 여행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광야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수백만의 여행을 생각해 봅니다. 한 번도 가 본적 없고, 들은 적 없는 가나안으로의 여행을 결행한 이들의 용기도 가상하지만, 자주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들을 이끌고 가던 모세 선지자의 충성스러움은 언제나 고개가 숙여집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을까…. 쉬고만 싶은 연세이셨는데, 80세에 바다를 건너고 100세에 메마른 광야를 걷고 120세가 되도록 산을 올랐던 그 여행…. 대적하는 이들도 함께 품어갔던 그 여행은 가히 천국 행로의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천국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는 여행도 있었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죄인들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인생의 고통을 맛보시며 죄악을 구속하시려 가장 처절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여행은 역행의 여행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분은 이 역행의 여행을 권유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그 후로 이 역행의 여행은 예수님을 좇는 여행이 되었고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여행이 되기도 했고, 머리 둘 곳 없는 기약 없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이 여행은 가장 고상하고 가장 거룩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여행, 버림으로 얻는 여행, 죽음으로 사는 여행인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며 가장 혐오하던 문둥이를 끌어안았던 프랜시스의 여행, 순결정신을 강조하며 맨발로 지리산을 오르내렸던 이현필 성자의 여행, 하나님의 밝은 빛을 폭사하며 힘이 진해 죽기까지 사랑을 외치셨던 이용도 성자의 여행, 총칼 앞에 정절을 지켰던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들의 여행….
성공하려고만 하는 이 시대엔 더욱 이 역행의 여행이 그립습니다. 가지고 누리려고만 하는 이 욕망의 시대엔 버리고 섬기려는 이 거꾸로의 여행은 더 더욱 빛이 납니다.
어떠십니까? 이 추운 계절에 매화처럼 피어나는 역행의 여행을 떠나지 않으시렵니까? 그 설레임의 여행을…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