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오도로의 아버지는 말년에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데오도로는 그런 아버지를 보살피려고 아버지를 따라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데오도로는 수도원에서 주로 궂은일과 힘든 일을 하였습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후에도 계속 수도원에 머무르면서 청소, 시장에 가는 일 등 허드렛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장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시장과 수도원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멀었기 때문에 무거운 짐도 짐이었지만 너무 늦으면 근처에 있는 여관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관에는 기질이 좋지 않은 방탕한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품행이 나쁜 탓인지 동네 건달 청년과 사귀다가 그만 아이를 임신하고 말았습니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임신하였으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아는 날에는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달 청년과 의논을 하자, 그 청년은 "이 곳에 왔다가는 미남 수도사(데오도로)에게 당했다"고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여관집 딸은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데오도로 수사가 자신의 딸을 임신시켰다는 거짓 사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여관 주인은 딸의 행실을 돌아보기는커녕 도리어 수도원에 가서 온갖 행패를 부렸습니다.

결국 '수도원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데오도로는 실컷 얻어맞고 수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데오도로는 생각하기를 "함께 간 수도사가 순간적으로 실수를 하였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사람의 죄가 드러나면 또 두들겨 맞고 내어 쫓길 것이니 그러면 그 사람은 타락의 길을 갈 터인데 차라리 내가 누명을 쓰고 당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쫓겨난 몸이었으나 데오도로는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담 밖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측은히 여긴 수도원 원장이 데오도로를 용서하고 다시 수도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료 수사들의 핍박, 멸시, 천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데오도로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참으며 천한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간음자'라는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에 아무런 반항이나 변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수치를 철저하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약 몸으로 건강한 남자도 감당하기 힘든 일들에 혹사당하여 그만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수도원 사람들이 데오도로를 장사지내기 위해 그의 옷을 벗긴 순간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그토록 '간음자'라고 비웃고 멸시하던 데오도로가 여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데오도로가 수도원의 명예를 위하여 모든 것을 혼자 뒤집어썼으며, 죄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수도원에서는 대대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데오도로 이름 앞에 거룩할 성(聖)자를 붙여서 '성 데오도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