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구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의 잔혹한 현실 속에서

평범한 농민인 이반이
10년 동안이나 매일 같이 반복되는 노동과
억압을 담담히 견디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교사였던 솔제니친이 스탈린을 비판한 편지를 썼다가 체포되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8년(1945∼1953),
유배 3년형을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사실에 입각하여 쓴 책입니다.

주인공인 이반은 얼어붙는 시베리아의 추위 속에서
벽돌 쌓기 등의 작업량을 성실히 달성하며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 비참한 현실의 적응자로서
소련의 비인간성을 고발합니다.

하지만 고발은 작가인 솔제니친이 한 것이고
이반은 그저 하루하루 담담히 적응해 가며
묶임 속에서 그 만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소설은 담백하게 끝을 맺습니다.


“슈호프(이반의 호칭)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 나게 블록을 쌓아 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 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년을,
그러니까 날 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3,653)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많은 묶임이 있지만,
제일 기막힌 묶임은 에수 그리스도 속에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무한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 속에 갇혀 버린 초유의 사건,
진리가 사상 속에 묶이고,
빛이 어둠 속에 묶였던 그 일은 역설적인 사랑의 선포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요3:16)


세상 어디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상 속에 이런 진리와 사랑이 있습니까…

이 사랑에 많은 분들이 감복하여 자신을 묶이게 합니다.
묶임 속에서의 참 자유를 얻기 위하여!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하신 그 사랑의 주님을 좇기 위하여!


히말라야의 맨발의 전도자 썬다씽이 여정 중에 들은 칼타씽의
순교 소식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전도 중 라마교도들의 핍박으로 물에 불린 물소 가죽에 담겨
질식사를 당할 때,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땅에 최후의 편지를 씁니다.
“빛이다!”

아! 참 자유는 방종 속에 있지 아니하며,
많은 획득에 있지도 아니하고,
자유의 근원이신 주님 사랑의 매임 속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그 묶임 속에 우리의 참 자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날이 많이 흐립니다.
구름에 하늘이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빛 속에서 묵묵히 푸르른 자유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