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나누는 사람들


유난히 추위도 잘 타고 콧물을 달고 사는지라 따뜻한 곳을 참 좋아한다. 그런 탓에 1층에서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은근히 열풍기 옆에 앉고 싶은 마음이 많다. 몇 달은 열풍기랑 가까운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자리를 다시 배치하다 보니 중간에 앉게 되었고, 못내 마음이 아쉬웠다. 때로는 줄이 조금 비뚤어져도 열풍기 옆으로 책상을 약간 당겼다. 오늘 아침에는 한 전도사님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일찍 나가셔서 열풍기의 열이 많이 전해져 왔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 오늘은 좀 따뜻하네! 저쪽에 앉으면 좋겠다. 아니지. 저쪽에 앉으면 문가라서 예배드릴 때 조금은 산만할 텐데…’ 제법 찬 기운이 많이 사라지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여전히 따뜻한 게 좋다. 온도에 민감한 코가 실룩거리면서 예배시간에도 몇 번씩 코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옆 책상에 있는 솔도 가끔은 꺼내어 어깨에 슬쩍 두른다. 문득 “너무 평안하면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훌륭한 건물과 안락함은 수사들을 묶어 두고 쉽게 움직일 수 없게 합니다.”라는 말씀이 떠오르지만, 여전히 육신은 편안함을 찾는다. 사순절을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의 결단은 중반이 지나면서 식어버린 양은 냄비마냥 영적인 힘을 잃고 있다.
새벽예배 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정신이 조금 든다. ‘그래.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자.’ 마음을 다시 고쳐 먹어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이것저것 잡무 처리를 하다 보니 정오시간도 지나고, 십자가 묵상 시간인 2시 30분도 훨씬 지났다.
얼마 후 함께 근무하는 간사님과 십자가 묵상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성경구절을 읽어 내려가는데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편22:19)라는 대목이 마음에 강하게 꽂힌다. 벌거벗은 예수님의 앙상하고 메마른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신 지극히 가난하신 예수님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 듯 했다. 십자가 아래로 피가 뚝뚝 흘러내리건만, 로마 병정들은 그 아래서 예수님의 옷을 네 깃으로 찢고 있다. 겉옷으로 부족했던가. 그들은 통으로 짜여 진 예수님의 속옷마저 가지기 위해 제비를 뽑고 있다. 가시가 박힌 머리에서 피 한물이 로마병정의 얼굴에 뚝 떨어진다. 로마병정은 짜증 섞인 얼굴로 귀찮은 듯이 피를 썩 닦아낸다. 예수님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면 그만이다. 탐욕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그들의 눈에는 십자가는 온데간데없다. 어느새 이기적인 한 로마병정의 얼굴이 나의 모습으로 겹쳐지는 듯 했다. 이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벌거벗은 예수님의 초췌한 모습을 보니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겠느냐? 언제까지 그렇게 너의 욕심만 채우면서 살아가겠느냐? 예수님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예수님의 살이 이리저리 뜯겨져 나가고, 피가 이곳저곳으로 튀어도 울지 않는 메마른 영혼이 이곳에 있다. 마음고생이 싫고, 남들에게 왠지 하찮게 보여 질 것 같은 궂은 일이 싫고, 더 이상 십자가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가련한 영혼이 이곳에 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앞에서는 환호하며 겉옷을 깔건만, 영문 밖으로 내어 쫓기는 예수님은 더 이상 따르기 싫은 이기적인 영혼이 이곳에 있다.
다른 사람의 충고 한마디에도 힘겨워하며 또다시 비방의 화살을 꽂아야만 답답한 마음이 풀리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조금만 더 앞서가도 불안해하며 불평하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옹졸함으로 가득하고, 나의 작은 아픔은 다른 무엇보다도 크게 보이지만, 타인의 아픔은 작게 보여 지고, 조그만 한 것도 다른 이에게 쉽게 주지 못해서 망설이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움켜쥐고 주지 못하는 탐욕이 내 안에 가득하다. 회칠한 무덤이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주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눅22:3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국의 소망을 두고 밭을 가는 자가 어느 때까지 세상 줄에 얽매어 살아가겠는가. 깨어나야 한다.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울며 울며 통곡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줄을 끊어 버릴 검을 사기 위해서는 모든 소유를 팔아야 하리. 육적인 편안함, 안일함, 부귀와 영화, 명예와 권세, 지극히 작은 애정과 욕망들, 작은 결점들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리. 주님의 피 묻은 옷자락 내 손에 사무쳐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야 하리. 겉옷도 버리고 속옷도 다 내어주고 그것도 부족해 생명까지도 내어주기까지 모든 것을 끊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하리. 그곳에서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준비된 은총의 옷, 흰옷을 입게 되리라.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