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멈추지 않는 시간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는데 바닥에 시계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뿔싸! 시계를 부랴부랴 꺼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겉 표면은 별 이상이 없는 데, 초침이 밖으로 빠져 나와 있었다. 나의 부주의로 인해 시계가 고장이 났건만, 마음이 조금 속상했다.
다음날 시계를 고치기 위해 시계방에 들렀는데, 아저씨가 새로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하면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자꾸만 강권을 하였다. 시계가 고장 난 것도 속상한데, 아저씨의 퉁명스럽고 불쾌한 표정으로 인해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고쳐달라고 하자, 마지못해 시계 내부도 살펴봐야 하고 초침도 고치려면 3일이 걸리니 그때 오라고 하였다. 며칠 후 시계방에 다시 들러 수리비 8천원을 낸 후 손목에 시계를 차는데, 유난히 가느다란 빨간 초침에 눈길이 옮겨졌다. 그러면서 불현듯 며칠 전 읽었던 『몽당연필이 된 마더 데레사』의 어린 시절 한 대목이 떠올랐다.
하루는 세 남매가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 앉아 같은 반 아이를 헐뜯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말없이 책을 보고 있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꺼 버렸다. 갑자기 캄캄해진 집안으로 인해 깜짝 놀란 아이들은 엄마에게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쓸데없이 떠들며 시간을 낭비하는 데 아까운 전기를 쓸 수는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
돌아보니 나의 삶도 쓸데없이 낭비한 시간들로 인해 등불이 꺼져버렸을 때가 너무나도 많았다. 내 마음대로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떳떳하게 살아 왔다. 어리석게도 물질이나 건강이나 위신과 체면 등 소유를 잃어버리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파했지만, 정작 시간을 잃어버려도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다.
구더기만도 못한 몹쓸 이 죄인은 높아지고 싶고 드러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시간을 갉아 먹었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자기 연민에 빠져 수많은 시간을 허우적거리다가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망연자실해 하기도 하고, 자그마한 일에 실족하여 넘어져서 하나님의 일을 멈추어 버리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와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져 이웃들을 비방하다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였던고. 십자가를 멀리하고 뒷걸음치다가 도리어 영적 무기력증에 빠져 고장 난 시계처럼 되어 버렸을 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정욕을 즐기는 데는 빠르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시간에는 얼마나 인색했던가? 아, 정욕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팔아 버린 도적, 가룟 유다와 무엇이 다를꼬.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창1:14), 창조주 하나님만이 시간을 운행하시는 분이시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수10:2).
만물의 찌꺼기만도 못한 이 죄인은 구석구석 살짝살짝 감추면서 정욕을 은밀히 즐기고 있는 위선덩어리다(엡 5:12). 착한 신자인량 그럴싸하게 행동해 보려 보지만, 하나님 앞에 무엇을 숨길 수 있으랴.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그 날이 너무나도 임박했다. 귀를 기울여 보라.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를 알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를. 재림의 나팔을 불때가 곧 눈앞에 이르렀다. 어느 때까지 베짱이처럼 애정과 욕망의 노래만 부르고 있을 건가? 지금은 세월을 아끼며 부지런한 개미처럼 곧 이를 영혼의 겨울, 추수 때의 양식을 모을 때이다(잠6:8).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몽당연필로 여기며 자신의 몸이 닳아 없어지도록 모든 시간을 드렸던 마더 데레사. 그녀가 많은 사랑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친 몸으로 쉬지 않고 밤마다 기도의 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 안에 빛을 밝히는 일과 그 빛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일에 온 생애를 바쳤다.
무엇을 좇으며, 무엇을 위해,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성인들은 결코 영적 손해를 보지 않았던 분들이다. 그분들은 매순간순간마다 분초마다 예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브라이트 병에 걸린 성 요아킴은 의사로부터 휴식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원장 신부님은 요아킴이 수도사들에게 목숨과도 같은 성무일과와 회칙에서 벗어나 쉬어도 된다는 특혜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요아킴은 이에 “제 병을 낫게 하는 것은 회칙을 엄수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과 똑같은 생활을 하기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는 여전히 다른 이들과 함께 일어나 기도하며 일을 하였다. 늘 쾌활한 미소로 병고와 피로를 감추고 있었다. 그는 수도원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고, 매 순간순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폐결핵 말기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용도 목사님은 불휴, 불식, 불면하면서 한국 강토를 회개의 눈물로 깨웠다.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빼앗겨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었다. 오직 예수님께만 미쳐 살고 싶어 하셨다.
영국의 대 부흥의 물결을 일으켰던 요한 웨슬리는 4분 동안 주님을 잃어 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페루의 성녀 로사는 장미꽃에 잠깐 마음을 빼앗긴 것조차도 철저하게 회개를 하셨다. 창녀였던 통회녀 마리아는 자신의 지난 삶을 뒤돌아보며 사막으로 들어가 평생을 그곳에서 참회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님만을 닮고자 그 어떤 시간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하였다. 초침이 모아져서 분을 이루고, 분이 모아져서 시간을 이룬다. 작은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구석구석 살짝 살짝 숨겨진 은밀한 정욕들을 다 들추어내야 한다. 매 순간순간 주님만을 주목하며 모든 삶을 주님께만 온전히 드려야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고 작은 베들레헴 마구간이면 어떠랴. 작고 작은 건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분초마다 깨어있는 삶을 통하여 곧 오실 예수님의 순결한 영혼을 드러내는, 작지만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빛나는 별이 되고 싶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