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목적의식을 심어 주라(창37: 5-11)
   본문에서 요셉은 두차례 꿈을 꾼다. 우리 믿음의 자녀들도 꿈,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희망을 갖게 하며, 믿음을 갖게 하며, 하나님께 귀히 씀임을 받는 도구가 되게 하며, 자신에게 삶의 자유를 누리게 하며, 또한 참 인생의 가치를 갖게 한다.
   대 다수의 아이들은 제나름대로 목표를 갖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겠다. 의사가 되겠다. 돈을 많이 벌어 보겠다 한다. 그들에게 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느냐? 반문을 해보면 제대로 답을 못한다. 목표는 있지만 목적이 없으면 그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다. 요셉은 그가 꿈을 가진 목적이 있었다. 곧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뜻뜻하게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우리 자녀들이 위대한 영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영웅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럼 어떻게 이 목적을 이루어 가는가? 인생을 길을 걸어감에 있어 목적이 없이 걸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갈 지’로 걸어가지 않겠나? 곧 바른 길을 걸어도 종착역에 도착하기 힘이드는 인생인데 어찌 중간에서 허비해야 되겠나? 그래서 자녀들이 가능한 빨리 인생의 목적을 갖고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자신이 설정을 해야 한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꿈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두었더라” 그의 꿈을 보고 도울 수 있고, 격려와 위로를 할 수 있을지언정 꿈은 대신 꾸어 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겠나? 아이들은 누군가를 닮기를 원하고 그와 같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항상 모델을 찾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모델은 TV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다. 좋은 모델을 찾는데 부모들이 도와 주어야 한다.  곧 위인전, 자서전, 좋은 책들을 읽게 하라. 그곳에서 인생을 배우고, 또 자신의 인생을 배우고 자신의 목적을 정하고 개척해 나간다.
   아이들이 목적을 세우고 나아가나 때론 긴 세월이 걸리고, 어려움을 많이 당한다. 곧 목적을 위해서 값을 치루어야 한다.  이럴 때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목표가 이루어 질 때까지 노력하고 인내하도록 해야 한다. 요즈음 아이들 너무 약하게 자란다. 저렇게 자라서 무엇이 되겠나? 염려가 된다.
  예수님은 그 목적,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30년간의 긴 세월을 준비했고, 3년간의 고투와 마지막 그 날을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바쳤다. 신앙 역시 긴 고난의 광야 생활 후에 가나안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않는가?
   그리고 연약한 우리 자녀들은 자신의 힘으로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갈 들수록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이루도록 안내를 해야 한다. 이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성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요셉은 어려운 가운데서 성실한 삶을 보냈다. 목적을 어떤 방법으로 이룰 수 있지만 성실이 따르지 않으면 악한 종이라고 하신다. 마치 한 방울의 비가 바다를 이루듯이 목표는 적은 성실부터 시작됨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