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차이 - 이미선


제 조카 예닮이는 생후 8개월이 지나 9개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고 서고 말하는 것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빠른 편입니다. 그런데 발육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같은 개월 수의 아기들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1kg이상 적게 나갑니다. 아마 모유도 이유식도 다른 아기들이 먹는 것에 반도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의 아기는 이제 5개월이 지나 6개월에 접어들고 있는데 키도 같은 개월 수의 아이들보다 크고, 몸무게도 벌써 10kg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아기가 모유만 먹는데 3개월이나 빠른 조카보다 크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발육의 상태는 개개인의 영양섭취와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영혼의 성장발육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 소화시켜 내 삶에 반영하는 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초기 신앙생활이 어떠하냐에 따라 좌우되기도 합니다. 성인들의 경우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성인들의 신앙생활은 말씀과 기도와 행함이 균형을 이루어 큰 기복 없이 이어져 가는 삶을 살아가십니다. 오래도록 끓여 잘 식지 않은 가마솥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가마솥에 오래 끓여 식지 않는 신앙을 가진 분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어 지식은 넘쳐나지만 그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 감동의 삶을 살아가는 분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 정도로 행함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강단에서는 성도들의 기분에 맞춰진 말씀을 전하다보니 성도들은 심한 영양불균형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한 명의 성도라도 더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기에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죄와 회개와 고난, 그리고 연단과 같은 말씀은 기피하고 성도들이 좋아하는 복과 성공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설교가 지나치게 웃겨 말씀은 기억나지 않고 한편의 코미디를 보고 가는 느낌이 들 때도 많습니다. 모두 성도들이 좋아한다는 것이 구실입니다.
강단에서 이렇게 하기에 성도들은 온전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봉사는 하지 않으려 하고 은혜만 받으려하니 균형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봉사를 성도들이 아닌 외부 업체에 맡기는 교회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바른 성장은 개인의 열심에 따라 다르지만 설교자의 영향이 더욱 크기에 입에 달기만 한 것보다는 짜고, 쓰고, 맵고, 신 맛도 느낄 수 있는 설교가 영적인 감각을 깨울 것이고, 연단과 고난, 회개와 봉사에 대한 말씀도 첨가해야만 영적인 영양상태가 균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영적 유전자의 차이는 어떤 영적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2사도들은 예수님이라는 완벽한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프랜시스의 제자들도 프랜시스라는 정말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들을 만났다면 당연히 좋은 영적 유전인자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목회자를 만나야 좋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게으른 목회자,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 말씀을 연구하지 않는 목회자에게 속한 성도들은 결코 좋은 영적 유전인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말씀은 영적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균형이 잘 맞아 성장발육이 남다르게 빠른 목회자와 성도가 한국교회에 넘쳐나기를 우리 주님도 학수고대하실 것입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우리도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주님, 새해에는 새롭게 하소서.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장이 있게 하소서!”
이미선

가마솥에 오래 끓여 식지 않는 신앙인을 만나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 분을 성자로서 추앙하시겠습니까?
믿음은 다른 사람 것이 아닌 자신의 것입니다.

금은 금 광석이라는 돌을 달구고 추리고 또 달구어서 뽑아 내는 것.
목사님의 설교도 금 광석입니다. 그 속에서 금을 뽑아 내는 것은
목사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복 받는 설교 속에도 죄의 문제 해결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는
지혜와 우스운 소리와 표정으로 하는 설교 속에서 진리를 알아가는
총명이 우리에게 있도록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말씀 속에 죄의 심각성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 한 사람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못을 박아 놓고
그것을 간증으로 자랑하며 말씀하시고 또 그것에 감동을 받는 무분별한
성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만일 정말 주님을 위해서라면 적어도 자신이
못을 박은 사람에게 미안함이 있어서라도 돌아다니며 간증을 못하는 것입니다.

참 된 신앙은 다른 사람의 행위나 말에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님과의 일 대 일의
옳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우리의 완벽한 지도자는 예수님이시고
성경 말씀입니다. 그 외에 다른 완벽한 지도자란 없는 법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