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바보 또이’로 살아가기

bcbab0e6b0fac7f6bdc7.jpg국어사전에 또이라는 말이 있다. ‘매우 또렷이, 사리에 밝게, 야무지게, 정확하게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또이 또이가 되어 자신의 똘똘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렇지 못할 때는 몹시 자존심 상해하고 분개한다. 하지만 바보 또이들도 있다. 겉으로는 내 권리나 정당함을 주장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데 속은 똘똘한 사람들이다. 바로, 하나님 보실 때 합당한 사람들이다.

사순절, ‘바보 또이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길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한다.

바보 또이의 길

이 땅에서 자신의 모든 것, 살과 피까지 내어주는 바보 또이의 전형으로 사셨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좋아하는 구절이지만, 이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끔찍이 아끼기 때문에, 가난을 싫어하고 남에게 멸시천대 받는 것에 몸서리치고, 내 것을 내어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하고, 행여 누가 내 허물을 지적이라도 하면 분개하는 자존심, 작은 말에도 상처받아 아파하는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바보 또이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길이기에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본받아 기꺼이 바보 또이가 되고자 했던 이들도 많다.

쪽방촌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요셉의원의 고() 선우경식 원장님이 있다. 그는 말기암 진단을 받고 뇌출혈로 쓰러지기까지 21년간 영등포의 쪽방촌 골목에서 노숙인 자선병원인 요셉의원, 전북 고창의 노숙인 자활센터를 세워, 43만 명의 환자들을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복귀까지 도왔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사람들, 살아 있지만 제도권 안에서 완전히 배제된 투명인간들, 어떤 인격적인 대우나 조건도 바랄 수 없었던 사람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병원을 세웠고, 그곳에서 그들은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아 몸과 마음을 치유하여 재활을 꿈꾸게 되었다. 가장 낮은 자세가 아니면 섬길 수 없는 사람들의 부서지고 망가진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사회에서 건전한 삶을 살도록 돕는 일. 그것은 평생을 건 의사 선우경식의 이상이요 사명이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병원입니다. 가난한 환자, 오갈 데 없는 환자, 환자 중의 환자, 꽃봉오리 같은 환자, 그분들은 하나님께서 제게 보낸 선물입니다. 우리 의료진들은 기업가 정신이 아닌 복음 정신으로 세상의 물질주의와 싸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청빈하게 살아야 합니다.”

원장님이 소천하시고 난 어느 날, 한 사람이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자활센터에서 봉사하는 약사 앞에 나타났다. “제가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을 받았어요. 선우 원장님 대신 선생님에게라도 한턱 쏘겠습니다.” 13년 전 요셉의원에서 만났던 그 노숙인, 그가 활짝 웃으며 반듯한 명함을 건넸다. 노숙인이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술을 끊고 일을 해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 선우 원장님은 이런 사건을 기적이라 했고, 이런 기적을 숭고한 사명으로 여겼다.

그가 처음 찾아온 날 원장님이 그 약사에게 처방전을 주시는데 약 이름과 함께 용돈 90만 원이라 쓰여 있었고, 그 옆에는 30대의 초라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원장님은 의료적인 처방 외에 밥, 이불, 잠자리 등 노숙인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처방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금 90만 원이라니, 사실 이 금액은 원장님의 월급(70만 원)보다 더 큰 액수였다. 그 돈이 매달 꼬박꼬박 그에게 지급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약사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원장님에게 자신이 수도사라고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되었다. “원장님, 그 사람 수도사 아니에요. 속았어요!”

그런데 원장님은 , 압니다. 오죽했으면 거짓말을 했겠습니까? 당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하셨다. 사실 원장님은 처음부터 그가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의 1년을 수사로 정중하게 대접한 이유는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13년 전 매달 꼬박꼬박 받았던 ‘90만 원이 마중물이 되어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정규직 사원이 되었던 것이다.

세상은 정해진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야만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준다. 하지만 규정된 조건과 자격이 미달되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아무 쓸모가 없다고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품고 섬기는 것은 세상이 정한 어떤 자격과 조건도 따지지 않는 바보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거룩한 바보들의 행진

그 옛날 바보 또이의 전형으로 사셨던 예수님은 어떤 자격이나 조건도, 시시비비를 따지지도 않으시고, 모든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묵묵히 죄인들을 품어주셨다. 그 주님의 사랑이 심비(心碑)에 새겨진 사람만이 부서진 인간들의 흉한 약점과 실패를 품을 수 있고, 실망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선우 원장님 또한 주님을 본받아 기꺼이 바보가 되고자 했기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환대로 노숙인들을 품었으리라. 그렇게 주님을 본받고자 했던 바보 또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무딘 양심과 세상 누룩으로 가득 찬 지성이, 마음은 원이로되 나약한 의지가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내가 두 번씩이나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할 때에도 짐꾼을 불러 부엌살림을 다 실어다주며 살다 살다가 힘들면 다시 오시오. 부디 하나님을 잊지 마시오.” 당부했던 도암의 성자 이세종.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 동인, 동신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았던 손양원 목사님. 신학자요 대학교수에 바흐 음악의 대가라는 명예를 뒤로 하고 다시 신입생이 되어 8년의 의과 과정을 마치고 아프리카에 가서 남은 인생을 바쳤던 슈바이처. 그들은 모두 바보 또이들이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 세상은 바보라고 놀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바보 또이들의 거룩한 행진이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