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은 한 번의 비에 옷을 바꿔 입었다. 연두와 분홍의 색감은 누구와도 편안함을 주고받는 인격처럼 조화롭다. 진달래는 호젓한 숲속 저편에도 이편에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단아한 모습으로 핀다. 그 위로 겨울을 견딘 나무에게 주시는 신록의 은총이 뿌려진다. 게다가 숲길의 감격은 바닥에서도 일어난다. 이슬 젖은 낙엽들을 밀치고 올라오는 새싹들의 함성은 조용하면서도 웅장하다. 그 누가 막을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생명의 탄성이다.
삶이 지치고 일에 피곤해져 그만 멈추고 싶을 때 이런 봄의 숲길은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려준다. 청각장애로 고민하며 절망하며 생의 회의에 빠졌던 그가 위로를 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곳은 언제나 이런 숲길이었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으며 사람들의 소란한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천상의 음을 듣고 생명의 환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들리지 않는 귀가 듣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자연이 담긴 ‘전원교향곡'과 최고의 교향곡 ‘합창’이 오선지에 기록되었다. 마치 숲길을 걷는 발걸음처럼, 그 위로 부어졌던 햇살처럼.
때로 가야할 길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일과 사람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이다. 그럴 때 걸어야 할 곳이 호젓한 숲속의 길이다. 특히나 이런 사월에는 그곳에 피어나는 봄을 아무 시선도 아무 방해도 없이 맞을 수 있다. 산새들의 경쾌한 노래는 덤으로 누리는 호사다. 딱따구리의 구멍을 파는 소리는 어떠한 기계음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움이 있다. 규칙적이면서도 부드럽다. 나무에 내는 부리의 음악이 어찌 장도리나 드릴로 내는 소리와 비교할까. 나뭇가지와 잎새 사이로 비추는 햇볕을 배경으로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이 어울려 내는 소리는 진정한 천연의 교향곡이다.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그 음악이 상하고 아픈 영혼을 치료한다.
소망을 잃은 이들은 숲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피어나는 희망을 보라. 칙칙한 인생살이에 환멸과 허무를 느낀다면 싱그러운 봄이 피는 숲길로 가라. 그곳에서 오르는 상큼한 봄의 내음과 부드럽고 즐거운 숲의 교향곡을 들으라. 그 숲속에서 자주 산에 오르셨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분은 어디에나 올 수 있는 분이시니 오염되지 않은 숲속에서 주님의 창조하심을 찬양한다면 어찌 만나지 못하리.
숲속에서의 기도는 순결하고 숲길의 산책은 청순하다. 분노나 미움이 어찌 함께 할 수 있을까. 음란과 술수가 어찌 숲까지 오랴. 봄이 피어나는 숲길을 걸으며 숲의 음악을 듣고 봄의 노래를 듣는 일은 이 봄에 시간을 내어서라도 할 일이다. 거기서 낙엽을 밀치는 새싹을 만나라. 바람을 타고 가지에서 가지로 나르는 산새들을 보고 그들 기쁨의 노래를 들으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봄을 주시고 숲을 주신 예수님을 만나라. 고즈넉한 바위라도 찾으면 그곳에 앉아 사랑의 노래를 부르자.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라. 눈썹을 건드리며 스치는 바람의 화음과 경이로운 봄의 찬양을 들으라.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주님을 찬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