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맑은 날엔

비가 오고 바람이 시원하게 분 다음 날, 모든 세계는 눈부신 개벽을 한다. 초록 단풍잎 사이로 뿌려져 부서지는 순백의 햇살도 눈부시지만, 등나무의 깨끗한 연두 잎 위로 쏟아져 잎맥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보이는 것도 싱그럽다. 양귀비의 적화는 나리의 불타듯 이글거리는 진홍에 수줍어한다. 조물이 아닌 지으신 분을 향한 사랑과 갈망의 열기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이렇게 맑은 날엔 만물이 창조주의 자비로운 손길에 온몸을 흔들며 찬양한다. 산도 구름도 모든 동식물들도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지난밤의 물기를 말린다. 밤새 고독한 영혼들을 위로하러 왔던 천사들이 아침 햇살을 타고 다시 하늘로 오르 듯 숲마다 정결한 안개들이 피어오른다. 산새들은 불안과 물기를 함께 털며 깃털을 말리고 꽃들은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편다.

계속 비가 내리고 춥고 음울한 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그것이 더 맑고 밝은 날을 예약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음울함이 계속되는 그런 곳이 있다면 거기는 지옥이리라. 하나님은 만물의 회복을 약속하시고 이를 이뤄 가신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21:5-6).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게 하신다. 실패도, 좌절도, 불안도, 미움도, 슬픔도, 고통도 다 지나간다. 죄악도, 악습도, 모난 성격도 다 지나가게 하신다. 새롭게 고치시고 비온 후의 맑은 날처럼 싱그럽게 바꾸신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3:9-10).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시다. 그 기쁨 속에 우리가 산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폭풍 치는 밤이 온들, 중병이 들든, 큰 사고가 난들, 파산하여 집 밖으로 내몰린들,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 앞에 누가 감히 막아설 수 있을까.

이를 신뢰하는 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다. 거룩한 계획 속에 있음을 감격해 하며 다만 이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미한다. 독생자 예수님의 희생까지 요구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만을 주목한다. 그렇게 자비하신 하나님을 좇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안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정결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 속에 사는 새 것이 된다. , 이 얼마나 복되고 거룩한 일인가!

이렇게 맑은 날엔 먼지 없는 하늘로 훌쩍 날아오르고 싶다. 솜털 보다 가볍게 세상을 관조하며 날아다니고 싶다. 비에 씻긴 밤처럼 은혜로 씻은 영혼이 되어 훨훨 날아 주님의 빛나는 나라 성민이 되고 싶다.

어서 어서 이루소서! 치고 째고 부서뜨려서라도 저를 만드소서! 그 거룩한 사랑의 계획을 신뢰하오니, 이를 이루실 주님을 믿사오니 어서 이뤄주옵소서!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