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이대로 좋은가


필리핀 세부에 가면 “어메이징쇼”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찬송가 405장 영문 제목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같이 은혜로운 것이면 좋겠는데 여장 남자들, 게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쇼다. 필리핀이 국민 85퍼센트가 가톨릭을 믿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사람들은 게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길에서 흔하게 조금 이상하다 싶은 여자를 볼 수 있는데 뭔가 어색해서 자세히 보면 여장 남자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는 동성 간의 성관계나 짐승과의 성교 등을 엄격하게 금하고 돌로 쳐서 죽일 죄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동성애 합법화 문제로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인데, 지난 9월 둘째 주에 필리핀을 다녀오면서 그러한 사실들이 더 피부적으로 와 닿았다.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더불어 화려한 춤과 노래로 무대를 달구는 이삼십 명의 게이들은 평범한 여자들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여행 가이드에게 들은 말로는 평균 나이 43세, 치과의사도 있고 장관 아들도 있고 각종 사회부유층과 권력층에 속하여 남부럽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돈 때문에 쇼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여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쇼에 출연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합법적으로 부부관계인 사람들도 있었다. 단, 가톨릭 국가이기에 거세는 하지 못하고 호르몬제 등을 투여하고 피부와 미용관리를 철저하게 하여 몸매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형, 오빠라는 소리에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 언니, 누나라는 소리를 듣기 원하는 남자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인간극장과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게이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삶과 애환을 조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바르고 점차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치마를 입고 싶어 하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면서 심각한 성 정체성의 혼란 가운데 자살 시도를 하고, 가족들은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삶을 살고…. 결국 성인이 되어서는 게이의 길을 선택했고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용납하고 인정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겪는 갈등과 고통, 방황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다. 그것을 보며 무조건적으로 동성애자들을 배척하고 지옥 갈 사람들로 단정하여 몰아붙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해는 되지만 용납할 수는 없는 사람들. 성경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알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점검해 봐야 하겠다. 우리는 본래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2-13).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소망 없는 자들이 참 소망을 갖게 되었으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리스도와 닮은 사람,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르는 사람. 이것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면 안 된다.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면서도 성경책을 끼고 다니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으면 다 된 줄 착각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은 흔적이 있어야 한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해서도 안 되고 인정받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3)이기를,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이 없다면 잘못된 성 정체성을 가진 게이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이는 육체의 정체성보다 영혼의 정체성이 잘못되면 더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국에 속한 백성이 지옥에 속한 백성과 다를 바 없다면, 우리가 게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더 한심한 시선으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한국교회에 영적인 큰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가신 분들이 우리 곁에 계시다. 이현필 선생님(1913-1964). 그분의 삶과 인격을 통하여 순결을 사모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고, 동광원이라는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었다. 동광원의 생활원칙은 첫째는 정절을 지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었고, 셋째는 순명하는 것이었고, 넷째는 깨끗한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이었고, 다섯째는 부지런히 일해서 자작자급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영적 스승의 사상과 삶을 본받아 거룩한 순결을 사모하며 열심히 달려가신 박금남 어머니, 그분의 향기는 참으로 독특하고 진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그분의 인사는 “사람은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깨끗하게 살아야 됩니다. 깨끗하게 사세요. 예수님 잘 믿으세요.”라는 것이었다. 103세라는 연로하신 몸에 내의 한 벌도 없었지만,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얇은 이불 하나조차도 사치로 여기며 늘 감사를 달고 사셨다.

돌아가시기 20여일 전부터는 음식을 드시지 않으시고 냉수만 드시었다. 이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아시고 마지막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그분이 남기고 간 한마디의 말씀이 긴 여운을 남긴다. “103년 동안 너무 많이 먹었으니 무슨 미련이 있어. 하나님 나라 갈 때에는 깨끗하게 가야지.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으로 가지 않아! 깨끗함으로 가는 곳이야.”

천국은 순결한 영혼, 정결한 영혼이 들어가는 곳이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정체성, 그것은 거룩을 향한 올곧은 지향이다. 기복주의, 쾌락주의,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익은 열매되는 성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도 익은 열매의 길로 가고, 다른 이들도 거룩한 삶의 본을 통하여 익은 열매로 이끄는 것이다.

갈수록 음란이 심각해지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세상을 향하여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고민할 시간이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기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