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지 않았느냐

모태신앙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소위 모범생으로 살았다. 목사란 별명을 갖게 될 정도로 그렇게 주입식으로 살아가던 무렵,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나를 찾기 위한 방황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1974년 11월 17일, 마음에 담고 있던 나만의 솔직한 기도를 진지하게 드렸다.

“하나님, 한 달간만 영적인 방학을 주십시오. 한 달간만 교회 출석을 쉬면서 종교인으로 길들여지고,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나를 떠나 참 나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 한 달의 방학은 해군 제대할 때까지 거의 5년 반으로 늘어났다. 그때는 믿음의 울타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의 보호막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탕자처럼 오랜 방황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돼지우리에서 쥐엄 열매를 먹던 탕자처럼, 나 자신이 세상의 오물 위에 앉아 있음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난 영혼이 얼마나 외롭고 배고픈지, 가까이 있을 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 그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님은 조용히 다가와 속삭여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야 네가 너를 알기 시작하는 구나. 이제 내가 너를 사용하리라.” 북한강 구름 속에 무지개가 보였다. 다시 입시준비를 하여 이듬해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렇게 새 삶의 은총과 부름의 희망 속에서 공부할 이유를 찾은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전도를 하였다. 그렇게 신학교 생활을 시작한지 1년 반 정도 지날 때부터 항상 입에 붙어 있던 기도가 있었다. “주님, 목회자로서 사역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를 어디에 사용하기 원하시는지요? 그동안 시간을 많이 허비했습니다. 주님의 계획에 꼭 필요한 곳에서 쓰임 받고 싶습니다. 미리 알려주신다면 남은 생애 최선을 다하여 그 사역에 올인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생과 교육전도사 생활을 해오던 나를 주님은 한 단계씩 훈련시켜 나가셨다. 먼저 성경암송과 묵상을 통해 말씀의 단비에 젖게 하셨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좀 더 깊은 말씀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제자훈련을 통해 나 자신이 붙들고 있는 것들을 점점 포기케 하시면서 주님이 주도해 가시는 삶을 가르쳐 주셨고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이끌기 위해 침묵수도로 이끄셨다. 더 큰 언어인 침묵 속에서 더 강렬한 주님의 현존을 보게 하셨다. 요란한 나의 볼륨을 낮추고, 세상의 소리로부터 귀를 닫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신앙의 본질이 개인 구원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참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청년기에 막 접어들 때 쯤, 영등포 시장 근처 노점상 아주머니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눈물로 고함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께 따지고 절규했었다.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면서요? 아직도 사랑하시나요? 사랑하신다면 왜 오늘 세상이 이 모습이며, 이런 아픔들이 터져 나올까요?” 이렇게 울며 외치자 그분은 침묵 속에 단호하고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래, 아들아! 난 아직도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단다. 그래서 내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지 않았느냐?” 그렇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셨고, 성만찬을 통하여 제자공동체를 당신의 몸으로 확장시키셨다. 이제 오늘 우리 교회가 주님의 몸인 것이다. 주님께서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어 교회를 세우셨듯, 주님을 본받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함을 보게 하셨다. 물질도, 교세도, 은사도, 규모도 아닌 진정한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으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회를 세우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주님은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절규하시며 가까이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우리가 손을 뻗기만 하면 그분은 언제나 손을 잡을 준비를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시며, 어둠의 땅에 예수님의 피가 떨어지길 원하신다. 아바, 하늘의 아버지. 세상의 것을 탐하는 자는 진정한 교회를 세울 수 없음을 보게 하셨다.

버리고, 포기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이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듣고 계셨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이 복되어라. 주님의 가난을 따르는 자 복되어라. 주님의 거룩함을 좇는 자 복되어라. 그 길을 따르기 위해 작고 소박한 아바공동체를 강원도 산골짜기에 세웠다.

이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