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얻는 것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1,18).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올해는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를 삶으로 실천해 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부분이 저의 자아에서 비롯한 갈망을 품고 하나님의 뜻에 불합한 의지로 행하는지, 그 증거는 실제로 단순하게 시험이라도 치르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 덮어줘야 할 상황들이 다가옵니다.
결국은 일을 그르치는 순간이 다반사이고, 그 순간이 다가오면 파르르 감정이 동요되어 굳게 먹은 결심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며칠 전에 어머님으로부터 큰형님께서 이번 설날에는 큰 집에서 모이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많고 큰 집은 집도 넓고 해서 명절 때는 큰 집에서 모이곤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에다 모일 곳을 부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들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어머님이 속상해 하시면서, 미국에 있는 딸에게 전화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모르는 척 지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서 매일 같이 사는 사람도 있는데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것도 힘들다고 하는 형님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10여일이 지나면서 만나고 느꼈던 사건과 감정들을 돌아보면서 이런 저런 불편한 감정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개의치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주님을 생각할 때 때때로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이웃들이 서로의 다름과 다양함으로 다시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6:9-10).
우리는 진리를 통해서 영적인 목표와 방향과 가치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위에 것 보다는 땅의 것을 추구하며,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선을 행한다 싶으면 낙심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저의 삶속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모릅니다.
잔느 귀용은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삶에서 불완전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행하시는 정화 작업을 겨울을 맞이하는 식물의 세계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겨울에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겨울은 나무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잎사귀들이 떨어져 일그러진 나무의 실상이 드러나지만, 나무는 그때 가장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그 어떤 계절보다도 겨울에 생명의 원천과 원리가 더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잔느 귀용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임하는 방식도 정확히 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싸고 있던 잎사귀들을 빼앗아 가십니다. 분명 무엇인가가 우리의 잎사귀들을 떨어뜨려 외적인 미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의 성품은 바닥부터 다시 세워지고, 영혼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을 합니다. 이 일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순결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자아에 대한 절대적 포기와 멸시가 일어나며, 이 포기와 자기 멸시의 과정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인격은 성장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런 갈등하는 순간들이 저를 성장에로 이끄는 초대의 목소리였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깨닫는 순간 큰 형님한테 전화를 걸어 이번 설에 부모님도 계시고 하니 저희 집에서 모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가족들 간에 분분했던 말들이 말끔히 정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일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지 않는 형제에게는 예수님의 빛을 조금이라도 나타내고, 믿는 형제들에게는 더욱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알게 하시는 목적이 있음을 생각할 때, 악의 도구로 쓰이지 않고 선한 도구로 사용되어짐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해의 결심이 무너지고 그르치는 순간들이 더 많다 할지라도 저를 성장하게 하고, 힘을 주는 내면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은총을 구해봅니다.
장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