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온전히 닮을 수만 있다면

피조된 모든 것에는 삼위일체의 인장이 찍혀있다는 칼리스토스 웨어의 말처럼 자연은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어 주는 것 같다.

며칠 전 매실을 수확하여 담그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늘 컴퓨터 작업만 하다가 자연 속에서 단순 노동을 하니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초록 잎에 둘러싸여 봉사하는 이들 모두 얼굴이 한층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참 일하는 중 옆에 있던 전도사님이 말을 건네셨다. “옆 나무의 매실들은 벌레가 많이 먹고 알이 실하지 않아 딸 것이 없었는데 이 나무는 열매가 잘 익어서 따는 맛이 나네요. 제 영혼도 이렇게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익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네요.”

나의 지난날이 떠오르며 주님 앞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았다. 8년 전, 하나님과 세상의 영광을 둘 다 붙잡겠다고 바쁜 나를, 주님은 공동체 삶으로 초청해주셨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원을 그만두어야 할지 몇 날 밤을 설쳤다. 행여나 나의 연약함으로 도중에 이탈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극심한 고민하는 가운데 주님은 응답하셨다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일평생 주만 바라면 너 어려울 때 힘주시고 언제나 지켜주시리. 주 크신 사랑 믿는 자 그 반석 위에 서리라.’ 찬양 속에 확신을 얻었고 새로운 신앙의 삶을 출발하게 되었다.

뜨거운 첫사랑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갈수록 식어져만 가는 나를 보며 당황스러웠다. 불만이 가득하여 주변 사람들을 원망했고, 지나간 일에 대한 공연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때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보란 듯이 석사학위를 따고 성공한 뮤지션이 되지 않았을까?’ 목표를 잃어버린 내 삶에는 병든 매실나무 같이 별 볼일 없는 열매들만 대롱대롱 맺혀있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순간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였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깨닫지 못하고 허황된 무언가를 꿈꾸길 잘했다. 젊음이란 소유도 불만족을 합리화하기에 좋은 핑계거리였다.

이런 내게 사하라 사막의 성자 샤를르 드 푸코의 생애는, 예수님 한분 닮은 인격보다 내 삶에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프랑스 장교 출신에 탁월한 지리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치던 샤를르 드 푸코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자, 오로지 그분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향한다. 엄격한 수도원 생활은 고기와 생선, 계란과 버터도 없이 겨우 허기만 면할 정도였다. 하인을 두고 부유하게 살던 푸코에게는 적응하기 쉽지 않던 환경이었지만 이를 통해 가난한 삶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여러 성인들을 연구했지만 결국 신앙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임을 깨닫고 실천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고민 끝에 나사렛에서 한 수녀원의 일꾼으로 고용살이를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나사렛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가난한 이들 틈에서 노동자로 일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대로 본받고자 했다. 완벽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처럼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애통해 해야 했다. 기도시간이 다 됐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또 다시 자기도 하고, 전에 사귀었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회상으로 괴로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온전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광야의 연단을 거쳐야 함을 알았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본받기를 푸코는 무던히도 애썼다.

사하라 사막의 선교사로 파송 받고는 언어도 익히고 사전도 편찬하며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한다. 이 무렵부터 그는 작은 형제들의 모임을 꿈꾼다. 자신처럼 개인 소유를 포기하고 손노동을 하며 어떤 형식도 없이 나사렛 시절의 예수님처럼 자유롭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이상을 품었다. 그러나 이상을 함께 나눌 사람은 없었다. 단 한명의 형제라도 함께 같은 길을 가게 되길 갈망했지만, 끝까지 고독했다. “침묵으로 이 세상의 성화를 위해 노력하라. 나를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되 입으로 선포하지 말고 표양으로 하며, 너 자신의 실천으로 전하라.” 푸코는 끝까지 이 주님의 명령에 충실했다.

오랫동안 외로웠던 푸코가 죽은 뒤 30년이 지나서야 썩은 밀알에 싹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의 정신대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모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에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샤를르 드 푸코의 정신을 배우고 연구하며 그처럼 살기 위해 노력한다.

주님을 닮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이를 위해 최적화 된 환경 속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제 이 환경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내게 주어졌다. 내 삶이 이곳 공동체에 고요히 묻힌다 하여도, 주님을 닮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형상 닮은 인격 하나 가지고 천국에 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