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열정


사랑의 사도


남원에는 나병환자가 많았다. 이현필선생은 떡을 많이 해서 제자 몇몇과 나병환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 다녔다. 곪아터져 진물이 나는 손을 꼭 잡고 악수하며 문안했다. 나병 환자들은 자기네 손을 잡아주는 일이 너무도 황송해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병은 다섯 번 뒤집어진답니다.”하고 절망스런 말을 했다. 이 선생은 “형님, 형님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데 나병이 났지만 이 죄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 병이 더 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극한 겸손과 사랑에서 나오는 진실한 위로, 그것은 작은 소자, 상하고 찢긴 소자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산 증인된 모습이었다.

어느 해 겨울 눈이 몹시 오는 밤, 이현필 선생과 제자 김준호는 불을 때지 않아 뼈가 저리는 차가운 방에 기거하고 있었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 옷을 입은 채 손에 깡통을 차고 하루 종일 구걸하러 다니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지만 하룻밤 따뜻이 쉴 구석도 없었다. 추운 겨울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마련되지 못한데다가 냉방에서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었다.

밖에는 눈이 하염없이 오는데 밤 열 시나 지났을까 그때까지 묵묵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이현필 선생을 보니 불쌍한 사람들의 일을 생각하고 계신 눈치였다. 눈 오는 밤 배고픈 사람들의 서글픈 얼굴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제자 김준호는 오늘밤 거리에서 가장 헐벗고 굶주린 이를 돌보고 오라는 스승의 음성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다리 밑에 가보니 가장 불쌍해 보이는 3명의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아이는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돌아온 그는 이 선생에게 거지 아이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 선생은 자신 몫의 이불 한 자락을 선뜻 내어주며 가져다주라고 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이불을 들고 다리 밑의 거지에게 갔지만 화가 났다. 자신의 처지도 불쌍한데 다른 이를 돌보려는 선생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 아이를 보자 가슴 밑바닥에서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끓어올랐고 그 아이가 죽기까지 간호하는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 스승의 삶을 어린아이처럼 이해하지 못한 채 불평을 늘어놓다가도 결국은 스승의 참 사랑과 그 깊이에 눈물 흘리며 체험하게 된다. 알 수 없을 것 같고 이해되지 않을 것 같던 스승의 행동들을 제자들은, 사랑을 실천하고 순종하는 그 자리에서 큰 감동으로 깨닫게 되는 체험을 매번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 가고자 생명을 걸고 고난의 길을 지켜 나가는 이들, 예수님의 사랑이 하나 된 심령을 소유한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신비한 성령의 능력이리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열정, 이현필 선생의 삶은 그러했다. 자신의 모습도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이었지만 잠시도 사랑을 실천할 그 누군가를 생각지 않으면 안 되는, 예수님을 닮은 멈출 수 없는 영혼 사랑이 그의 속에서 불꽃처럼 타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그 현장에서 눈물로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곤 하였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떠올렸다.

이현필 선생은 주님의 고난에 몸소 동참하기 위해 행한 잦은 절제생활 때문에 여러 번 입원하셨다. 제자들 중에 마음이 흔들리고 시험을 받고 있는 제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는 애통하다가 각혈을 하였다. 연약한 영혼을 특히 아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다든지 작은 일에 사로잡히는 사람을 볼 때는 그 때문에 피골이 상접하여 밤새 앓으며 애통하였다

하나님께 몰입된 삶

내가 아닌 타인의 영혼을 위해 울 줄 아는 사랑의 마음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정도를 걷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삶을 통해 나타나는 법이다. 이현필 선생의 삶 대부분은 지극한 예수님의 사랑에서 기인한, 영혼을 위한 진실한 통회에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 절대적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이시여! 저를 지옥 밑창까지 따라와 주시면서까지 권면하시고 훈계하시고 끌어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여! 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었던들 저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의심할 수 없는 이 사실 앞에 이 좁은 입으로 만방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울고, 그 사랑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울고, 그 사랑을 실천하다가 울고, 오직 예수님 때문에 감격한 사랑의 발자취였다.

오랜 기간 결핵으로 고생하던 제자 김준호를 간호하던 이 선생은 자신도 후두결핵병으로 병상에 눕고 만다. 그 소식을 들은 제자 김광석이란 분이 문병을 왔다. 후두결핵으로 인하여 말씀하기 어려웠던 이 선생은 찾아온 제자 앞에 떡 열 개를 내어 놓으며 필담으로 “잡수시오.”하고 쓴다. 황송한 제자는 사양했으나 손짓으로 계속 권하여 한 개 먹었다. 그러자 또 먹으라고 권하고 또 먹고 나면 또 먹으라고 권하고 결국 내놓은 떡 열 개를 다 먹자 “이제야 제 배가 부릅니다.”라고 기뻐했다. 그의 권함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했다. 언제나 깊은 친절, 마음의 친절을 베풀었다. 다른 이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고 다른 이의 만족이 곧 자신의 만족이 되는, 다른 이로 인해 기쁘고 감사한 삶이 그의 삶이었다. 병들고 지친 영혼들, 소외되고 방황하는 잃은 양들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그의 한 마디와 한 걸음은 결사적이었다. 모든 일에 생사를 걸고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을 걸으셨다. 그는 병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깨달아 “오! 축복하신 이 결핵병이여! 내게서 영원히 떠나지 마옵소서.”하였다. 곁에서 시중드는 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우십니까?”하면 “글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 아플지라도 주위에 자신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고통 속에 들어가 그 사람과 하나된다고 말했다.

한번은 이가 상해서 송곳같이 뾰족한 끝이, 긴 시간동안 열심히 말씀하시는 선생의 잇몸을 찔러서 구멍이 뚫리고 피가 흘러 나왔다. 그런데도 긴긴 시간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렇게까지 자기 희생을 하며 남의 영혼을 위해 한 마디라도 더 가르치고자 애쓰는 선생의 모습은 거룩하고 눈물겹기도 했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많은 이들이 메마르고 공허한 영혼의 갈증을 채우지 못해 혼돈하고 방황하는 세대이다. 참으로 이현필 선생같이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리운 시대다. 예수님을 수 만 번 외쳐 부른들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 사랑 때문에 바로 살아보고자 몸부림치고 그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고 싶은 열정이 이 선생의 삶에서 우리 곁으로 절박한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생애에 십자가의 길을 예비하셨듯이 예수님의 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도 십자가의 길을 마련하셨다. 이현필 선생이야말로 십자가의 길을 피 흘리며 가신 분이다. 제자들이 곁에서 지켜본 이 선생은 꼭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이 선생은 고통 속에 내재된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통을 기뻐하였다. 그래서 고통을 회피하기보다 더 괴로움 당하기를 소원하면서 자기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던 것이다. 이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한 방법은 예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아 돈 잘 벌고 몸 건강하며 모든 일이 잘 된다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공리주의적 신앙(功利主義的 信仰)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의 길인 십자가에 대한 갈망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자세이며, 따라서 고통을 면하려 하지 말고 도리어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겪기를 원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