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일어서라

어느 시인은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라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경청한다.”라고 표현했다. 세상에서의 삶은 슬픔의 연속이다. 무릎을 꿇어야 할 순간들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이어 오빠와 아버지를 주님 나라에 보내고 난 뒤, 암 투병으로 산소 호흡기를 끼고 가느다란 숨을 내쉬는 작은 언니를 보는 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슬픔에 젖은 엄마의 어깨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신음하며 기도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단어는 희망이었다. 혹시 하나님께서 작은 언니를 살려주시나 하는 작은 소망의 끈이 생겨났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며칠 후 모든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언니 역시 주님의 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7살 밖에 되지 않은 조카가 충격을 받을까봐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 초점 잃은 눈으로 함께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난 그때 울분이 쌓여 마음속으로 절규하였다. ‘하나님, 왜 제게는 언니를 살려주실 것처럼 하시고서 천국으로 데려가셨나요?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희망인가요?’ 당시 슬픔이 너무 컸기에 나에게는 시커먼 먹구름만 보였다.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결말은 언제나 긍휼하시다.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요 희망이시다. 슬픔의 길을 통과하여 마침내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셨던 우리 주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꽃을 피우셨다. 온 세상이 흑암으로 뒤덮이고 하나님마저 눈물을 흘렸던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 주님은 부활의 아침을, 우리의 영원한 처소를 준비해 놓고 계셨다. 어떤 절망과 큰 슬픔이 닥쳐도 우리는 결코 거꾸러트려지지 않는다.

단테는 신곡지옥편에서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글로 그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지옥을 묘사하였다. 하나님은 한 올의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우리를 옮겨 놓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땅에서의 슬픔은 한낱 티끌에 불과한 것. 영원한 천국이 있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소망할 수 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우리를 결코 포기치 않으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믿는 자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주님께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보여주신 것은 이 땅에서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이어지는 소망을 잃지 말라는 하나님의 크나큰 위로였던 것임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 청년이 있다. 제주도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30세의 젊은 청년은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눈을 떴다. 오른손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손에 붙잡힌 것은 성경이었다. 사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간호사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주님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단하고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면서 땅 끝을 묵상하다가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땅 끝 마라도를 품기 시작했다.

7년 뒤 19841224,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대한민국의 최남단 마라도에 도착하였다. 신학교 졸업을 앞둔 방다락 목사는 그렇게 마라도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열아홉 가구밖에 살지 않던 외톨이 섬이었다. 처음 그곳에 들어갔을 때 너무나 배타적이어서 아무도 그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욕설을 들으며 많은 모욕도 당하였지만, 영혼에 대한 열정으로 복음을 열심히 전하였다.

그곳은 숲이 없어 유일한 땔감은 소똥과 같은 가축의 배설물이었다. 이도 귀해 땔감 때문에 형제간에 싸우는 일도 잦았고, 고된 일로 땀이 범벅이 돼도 물이 귀해 씻는 일이 흔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온몸에서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 좁은 방에서 나는 악취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목숨 걸고 땅 끝까지 찾아왔는데, 어떠한 욕을 먹어도 참고 복음을 전했는데 믿음의 형제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참을 수 없다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색도 할 수 없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 다른 모든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저 냄새만은 참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 너도 저들처럼 살아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냄새가 나는 이유가 저들은 씻지 않고 나는 씻기 때문이니, 이제부터 나도 씻지 않으리라.’ 복음을 위해 목욕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기호마저 바꾸자 더 이상 냄새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마귀는 그가 슬픔에 무릎 꿇도록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1985년 그해 태풍으로 말미암아 8평 남짓한 교회당과 사택이 날아가 버렸다. 오직 복음을 위해 왔다지만, 그의 몸은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왼쪽 눈은 실명되고, 영양실조로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했지만 교회는 다시 세워야 했다. 30여 교회에 편지를 보내 교회의 재건을 부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여유가 생기는 대로 조금씩 시멘트를 사고, 모래를 사서 스스로 교회를 보수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일을 하고 있는데, 두 명의 아가씨가 찾아왔다. 일꾼인줄 알고 다가서던 그들은 목사라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돌아갈 때 신약성경 두 권을 손에 쥐어주며 꼭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했다. 얼마 후 등대 무전연락을 통해 그를 초청하는 연락이 왔다. 약속장소에 가보니, 제주도 아가씨들 60여 명이 식당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봉투를 주면서 꼭 돌아가서 펴보라고 당부했다. 돌아와 봉투를 여는데 그곳에는 편지 한 통과 돈이 들어 있었다.

목사님, 저희는 제주도 기생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이에요. 목사님이 주신 성경책을 집에 가서 읽다보니 누가복음에 나오는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보면서 회개했습니다. 저희가 60여 명의 다른 아이들을 전도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가 너무나 감사해서 무엇인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각자의 통장을 털어서 마라도교회 건축을 위해 쓸 헌금을 마련했어요.”

그들이 눈물로 모은 돈 870만원으로 마라도교회가 지어지게 되었다. 절망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두 명의 기지촌 여인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교회를 세우실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육지와 멀리 떨어진 그곳에는 자기의 삶을 포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대부분 희망을 잃고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새로운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찾으라고 그들을 권면하여 30여 년간 돌려세운 사람만도 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어느새 마라도에서 자살지킴이로 유명해졌다. 그가 참된 희망이신 예수님만을 붙들었을 때, 그 불꽃은 많은 생명을 살리는 불씨가 되었다.

우리의 참 희망이신 주님을 소유한 자는 슬픔에 영원히 무릎 꿇지 않는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여, 일어나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을 피우며 복음의 전선에 뛰어들라. 천국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길이 그대들을 통해 놓여지리라.

주님께 희망을 품어라. 주님께 소망을 두어라. 그것이 우리의 살길, 영원한 쉼이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