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사랑


시애틀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에서 아홉 명의 아이들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기 위해 출발선에 모였다. 출발 신호와 동시에 모든 아이들이 힘껏 앞으로 내달렸다. 그때 한 소년이 그만 다른 아이의 발에 걸려 넘어져 울기 시작했다. 나머지 여덟 명은 그 소년의 울음소리를 듣자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땅에 앉아 있는 소년을 보더니 모두 그에게로 돌아왔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한 소녀가 몸을 굽혀 그 소년의 다리에 키스를 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면 훨씬 나을 거야.” 그러더니 아홉 명의 선수가 서로 엇갈려 팔짱을 끼더니 결승점까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기립해 박수갈채를 보냈고, 그들의 환호성은 몇 분간 계속됐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라는 악평을 듣는다. 예수님이야말로 더없이 거룩한 분이지만 어떤 사람도 가리지 않고 그 눈높이에 맞추어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우아하고 고상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거룩한 삶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잘 드러내는 분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편안함을 안겨주는 사랑이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이다.

 

누렇게 바랜 옥양목 저고리와 검은 통치마, 남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으며 수많은 광주 사람들의 어머니로 살다간 파란 눈의 선교사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12년에 32세 처녀의 몸으로 조선에 와서 조선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간 서서평 선교사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1880-1934)으로 독일 출신의 미국인 간호사였다. 자신의 급한 성격을 다스리기 위해 천천히라는 의미의 ()’와 평온할 평()자를 넣어 우리나라 이름으로 서서평이라고 지었다. 그녀는 거리를 헤매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일 나 먹기 위해 오늘 굶는 사람을 그대로 못 본 척할 수 없으며, 옷장에 옷을 넣어 놓고서 당장 추위에 떠는 사람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평생 결혼한 적 없지만 한센인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아들 삼고 열세 명의 딸을 입양해 어머니가 되었다.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38명의 과부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사람들이 기피했던 한센병 환자들까지 끌어안은 그녀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제주도까지 56시간의 뱃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혼자 생활하기도 빠듯했던 선교비를 먹을 것을 줄여가며 모으고 모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썼다. 결국 5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몸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였다.

그녀가 남긴 유품은 걸인에게 나눠주고 남은 담요 반 조각, 동전 7, 강냉이 가루 2홉이 전부였다. 부검 결과 그녀의 병명은 영양실조였다. 모든 것을 주고 떠난 그녀의 머리맡에 한 마디의 글귀가 쓰여 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

마치 사막에서 꽃을 피우듯 그렇게 고난 가운데 정화된 영혼에게 주님은 당신의 사랑을 선물로 주셔서 어머니처럼, 친구처럼 편안함을 안겨주는 사랑을 나누게 하셨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사랑을 나누게 하셨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이해받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모 교회의 사모님은 울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사모님이 섬기는 교회는 처음 설립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 인생의 후미진 어둠의 길에서 어렵게 교회를 찾아온 영혼이 닫힌 교회 문 앞에서 혹시 뒤돌아서면 어쩌나 해서다. 그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해서다. 대소변은 치우면 되고 물질적인 손해는 대가를 치르면 된다고 하셨다.

어느 날 남루한 옷에 흙이 잔뜩 묻은 채로 막일을 하는 노동자 한 분이 며칠 일한 품삯을 봉투에 넣어 가지고 왔다. 자신은 삶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 때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교회 십자가를 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다시 일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회 십자가의 불이 고장 나서 꺼진 채로 있은 지 여러 날인 것이 가슴 아팠다는 것이었다. 그 불을 다시 켜고 싶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가지고 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울고 있는 우리들 곁에 항상 함께 있어 주세요.”라고 말하며 돈 봉투를 내밀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함께 웃고, 함께 울어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환경과 사람을 굴절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편안함을 안겨주며 배려해주는 눈높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사랑이신 하나님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박미선